형이 훌륭하면 동생이 괴롭듯이, <다크나이트>의 완성도가 워낙 높은 탓에 <다크나이트 라이즈>(이하 라이즈)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조용히 영화를 내렸다. 물론 흥행에서는 성공했지만 <라이즈>가 <다크나이트>만큼의 작품이냐는 질문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사실 두 작품은 지향하고자 하는 바도 많이 다른 것 같아 보인다. <다크나이트>가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대의에 대해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구멍들을 지적하는 작품이었다면, <라이즈>는 그런 대의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브루스 웨인이라는 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트맨의 비중은 여전히 작다..
혹자는 이 작품에 대하여 급진적 시각을 갖기도 하고 (홍명교씨의 다음 글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앞에서 방황하는 비평 : 악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http://hook.hani.co.kr/archives/44572 )
나 또한 그런 평들에 대해서 지극히 공감하고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김민하씨가 "<라이즈>는 민주노총 위원장 베인을 자본가 배트맨이 탄압하는 내용"이라고 농담을 할때 낄낄대며 웃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행복과 강박에 대한 이야기를 <라이즈>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놀란이 <라이즈>에서 배트맨이 어떻게 자신의 강박을 극복하고,(혹은 안고서) 자신이 원하는 질서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그 나름의 답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작 영화가 보여준 것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결국 강박이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 아닐까. 알프레드의 바람을 실현이라도 해주듯이 죽음을 가장하여 배트맨을 그만뒀을 때가 사실 배트맨 트릴로지를 통틀어 그가 가장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 아니던가? <다크나이트>에서 하비덴트는 "살아서 악당이 되거나, 죽어서 영웅이 되거나"라고 했지만 <라이즈>에 와서 이를 "살아서 불행하거나, 죽어서 행복해지거나"로 바꾸어도 괜찮을 것이다. 물론 폭탄을 안고 날아간 희생이야 엄청나지만 이미 그 결심 자체가 탈출을 통한 생존을 염두에 뒀다는 점에서 예수와 같은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어쨌든 후반 마지막 씬들만으로도 많은 팬들이 충분히 만족하고, 지난 몇 년간의 기다림에 보상을 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뒤집어 말하면, 이 영화는 팬의 입장을 벗어나서는 두고두고 좋다고 느끼기 어려운 그런 작품이기도 하다. 팬의 입장으로서도 아쉬운 점이 많지만, 브루스 웨인이 행복해졌다는 걸로 일단은 만족하는 수 밖에. 그치만 베인을 살리지 못한 것은 정말 너무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