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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GL 6000 & 가젤 OG





 어렸을때 월드컵 등에서 파는 운동화를 사면 항상 장난감을 끼워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조잡한 품질이지만 그래도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제품들은 아니어서 항상 탐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사본 적이 몇번 없다. 발이 항상 또래 애들보다 컸기 때문에 좀 크고 나서는 초등학생 장난감 끼워주는 운동화 중에 내게 맞는 사이즈는 아예 없었던 것이다. (내 발은 중1 무렵 280 정도였다.)

 자, 이제 성장기가 끝나고 내 발은 빼도 박도 못한채 300이 되었다. 살을 빼면 295가 될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신발을 신었을 때 가장 편한 사이즈는 300이다. 290짜리를 사면 약 2주 정도는 고생을 하며 신고 다녀야 한다. 길이만 300인게 아니다, 발볼도 남들보다 큰 편이라 컨버스 같은 걸 신으면 푹 퍼져버린다. 8월 즈음 산 닥터마틴은 290짜리이지만 정말 3주 정도를 발을 부여잡고 고생했다. 사느라 고생하고 신느라 고생하고 있으면 정말 발을 깎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항상 내게 신발은 패션이라기보다는 불편한 무엇인가였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 '이쁜 신발'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300이 별 수 있나.

 학생때는 돈을 제대로 못버니 그나마 290~300을 가지고 있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운동화는 꿈도 못꾸고 ABC마트에서 그저 발에 맞는 싼 신발을 찾아 다니는게 일이었다. 신발은 또 어찌나 닳던지..이제 신발 한켤레 정도는 사 신을 수 있는 돈을 버는 지금도 이 큰 발 덕분에 신발을 사는 건 항상 일이다. 이쁜건 사이즈가 없는 경우가 많고, 사이즈가 있다 하더라도 발볼 덕에 푹 퍼져버려서 안이쁜 경우가 대다수다. 반스의 스니커즈들을 보며 얼마나 사고싶었던지. 그러나 언제나 사이즈는 280까지. 

 어쨌든, 그 동안 신던 운동화가 다 닳아 운동화를 두켤레 샀다. 닥터마틴을 열심히 신고 다니지만 그것만 신고 다니기 불편하기도 했고. 하나는 가을 들어설 무렵 구매한 아디다스 가젤 OG고 다른 하나는 리복에서 얼마전 나온 GL6000이다. 둘 다 각 사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니 300까지 사이즈가 있었다. 예전같으면 10만원짜리 운동화, 사이즈 있어도 구매 못한채 피눈물을 흘렸을 텐데..일하는 건 좋구나.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결과적으로 1무 1승. 아디다스 가젤의 경우 그 신발이 가지고 있는 가벼운 이미지가 좋아서 샀는데. 역시 이런 종류의 얇은 신발은 발볼이 좁아야 이쁘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 이쁜 빨간색 신발이 300의 무자비한 도둑발에 들어가니 옥상에서 떨어뜨린 반죽마냥 푹 퍼져서는 날렵한 느낌이 전혀 안 사는게 아닌가..나름 고민하며 산 신발이거늘, 더군다나 겨울에 신기엔 너무 미끄러워서 일단 종종 신더라도 봄에 주력해서 신기로 하고 한동안 닥터마틴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리복 GL6000은...사실 리복 운동화를 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고척동에서 술 먹고 첫차를 기다리는 내게 버스에 붙어있는 GL6000 광고가 뙇. 소희라는 연예인을 한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는데 이 광고에서는 어찌나 이쁘던지. 소희가 이쁘니 GL도 이뻐보이고...겨울 운동화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운동화로 해야겠다. 라고 결심했으나 언뜻 보면 레트로한(이라고 쓰고 촌스러운 이라고 읽는다) 색깔 때문에 다시 다른 회사의 제품들을 알아보며 전전긍긍했더란다. 

  그러나 나이키 루나의 형광색과 복잡스러운 디자인을 소화하기에는 난 아직 그리 트렌디한 사람이 아니고, 아디다스 슈퍼스타나 나이키 포스보다는 좀 더 다채로운 색깔의 신발을 신고 싶었다. 오니츠카 타이거가 유력 후보였지만 아..글쎄요. 나같은 발볼은 가젤도 소화 못하는데 오니츠카 타이거가 왠 말이란 말이냐.

 결국 눈을 반쯤 감은채 회사 복지 포인트로 GL을 질렀고. 사진보다 훨씬 이쁜 색깔과 발에 딱 맞는 사이즈 덕에 편하게 신고 다니고 있다. 물론, 소희가 신는거 같은 각은 나오지 않는다. 발이 크니까..그래도 가젤OG만큼 푹 퍼지지는 않는다.

 사이즈에 맞춰 불편하고 딱딱한 신발을 울며 겨자먹기로 신다가 이제는 그래도 그나마 편하고 맞는 신발을 찾아서 사 신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내 발 300의 조건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은 가고 운동화와 내 몸이 닳아도 발은 닳지 않는다. 무엇을 신어도 그 신발 고유의 이쁨을 살릴 수 없고 왠만해서는 편하지도 않다. 마치 해바라기씨를 가득 물은 햄스터의 볼 마냥 내 신발들은 항상 거대한 발을 담느라 푹 퍼지고 터지고 고생한다. 그나마 찾은 대안들은 이 운동화 두켤레와 닥터마틴이지만. 이 신발들이 닳으면 또 고민을 해야한다. 나에게 있어서 신발쇼핑은 마냥 즐겁다기보다는 걱정이 반이다. 나도 그냥 아무거나 사서 신을 수 있는 발 사이즈면 좋겠다. 그나마 구두에 취미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