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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참 다양한 세상이지요.





 오늘 아침도 스마트폰 액정위에 생판 모르는 남들이 좋아하는 글이 반복되며 지나간다. 재미있거나 의미있는 정보라면 모를까, 하도 기이하여 호기심에 클릭해보면 느껴지는 것은 보통 당혹감이거나 혐오감이다. 그러나 가끔 그 글과 거기에 달린 좋아요,댓글을 보고 있자면 내가 생각하는 세계와 좋아하는 것들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아니, 편협하다기 보다는 정말 세상의 구성이 다양함을 느끼는 것이다.


 약간의 짜증과 어이없음을 참아낸다면 요즘 SNS의 글들은 강제적으로 배달된다는 점에서 나름 세상의 다양함을 느끼게 해주는 배달부 역할을 한다. 타인을 내 타임라인에 추가시킬지 말지는 나의 재량에 있지만, 내 친구의 좋아요나 리트윗을 막을 방도는 없다. 흥미롭게도, 많은 이들이 개인의 인맥을 효과적으로 유지시켜주는 폐쇄시스템이라 생각했던 페이스북은 요 근래 들어서 '효과적 대인관계를 위해 숨겨왔던" 다른 이의 속내를 순간순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해주고 있다. 무의식적인, 혹은 순전히 호의적인 마우스 클릭 한방이 나의 정치적 성향과 개그코드를 알려준다. 특히 정치적으로 좀 무디거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한 이들은 페이스북에서 거의 벌거벗겨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거야 말로 디지털 독심술이라 할 만하다.


  물론 그런 타인의 취향들을 굳이 알아야 하는지는 의문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글들이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엄연한 현실로 인정할 필요는 있다. 그러한 흐름에서 유의미한 정보는 얻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어떤 사실들-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현상들, 혹은 존재들이 엄연히 다수 존재한다는 것-을 배울 수도 있을지 모른다. 


  눈물이 흘러서 형광등이 깜빡거린다는 오글거리는 글이나, 클럽문화는 쓰레기이므로 걸레같이 살지 말고 바르게 살라는 한 젊은 개독인의 글에 달린 수많은 중2병과 여성혐오증 남성들의 반응들을 보면서 그들에 비해 우리가 우월하다고 자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예상치 못하게 그러한 이들과 우리 삶을 같이 살아가야 한다. 물론 그런 수준의 이들은 흔치 않다. 그러나 그런 찌질하거나,극렬한 내면은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으며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많은 이들이 그것을 억제하거나 극복해야 할 무엇인가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 자신의 도덕적 판단과 상관없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우열로 받아들여봤자 폐허가 된 자기 자신의 인간관계 말고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은 요즘의 나에게도 절실한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