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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0829] 교육의 자유, 교육의 의무.

만 10세 유승원군 검정고시 합격 결국 취소

만 10세의 소년이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것에 대하여 대법원 판결을 통해 합격취소를 확정했다는 기사. 언뜻 보기에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 부당한 판결 같아 보인다. 그러나 판결을 잘 읽어본다면,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 판결의 의의에 공감했고 이 결정에 매우 찬성하는 입장이다.


일단 판결문의 내용은 이렇다. 아동에게 단순한 지식 전달 뿐 아니라 사회 적응 능력을 기르고 예절,윤리를 가르쳐 전인교육을 실시하려는 초등학교 의무교육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중입검정고시의 연령제한이 생겨났다는 것. 때문에 검정고시 합격 취소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좀 더 간단히 말하자면 초등학교 의무교육은 개인의 능력차나 배경 등에 힘입어 생략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아니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받아야 하는 필수 코스라는 것. 때문에 이걸 검정고시 등으로 패스할 수는 없단 이야기로 나는 이해했다.


분노하는 이들은 국가가 왜 개인의 선택권이나 타고난 재능을 억압하냐고 화를 낼 것이다. 그러나 공교육의 강화 혹은 의무교육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판결의 취지에 충분히 찬성할 것이다. 6년의 시간을 어찌되었건 배경이나 성격 상관없이 서로 어울리고 부대끼며 사회화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고, 또 그것을 의무화 하는 것은 공공성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굳이 반대할 일은 아니다. 교육을 단순히 지식의 습득으로 본다면 이 판결은 어이 없는 억압이지만 교육이 만약 한 인간을 길러내는 기회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 판결은 지극히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문이 그런 합리성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황에서 저 글들은 심각한 정신분열증 같아 보인다.나만 느끼는 것일까? 성추행범이 여성권 신장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판결을 한 판사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의 판결이라는 것이 한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를 표명하는 목소리라고 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판결문에서 말하는 전인교육, 예절, 윤리, 사회화 등이 얼마나 허구적인 이야기인지, 공교육이 그런 목표들의 실현에 얼마나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지는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부터 직접 겪어봐서 알고 있다. 경쟁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우리 세대의 존재 자체가 공교육 실패의 산 증인이다. 그 공간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설사 윤리니 전인이니 하는 것을 시행한다고 해도, 도대체 정부의 입맛대로 바뀌는 윤리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반공은 윤리적인 것인가? 자유시장경제의 위대함은 가르치면서 노동 3권은 숨기는 것은 전인교육인가? 잠 잘 틈도 없이 학교와 학원을 돌아다니느라 바쁜 아이들이 사회화가 되고 있는 것인가? 교과과정을 떠나서, 어렸을때부터 경쟁은 시작되는데, 누구는 돈 많은 부모 만나서 즐겁게 다니고, 누구는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채로 허덕이며 다닌다. 공교육을 믿고 있으면 남는 것은 지체와 낙오 뿐인 것이다. 그런 마당에 공교육은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향점이거나 당위성일 수는 있어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일 수는 없다.


사람들이 이 판결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능력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인 태도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 공교육이 끝장났다는 걸 알고 있기에 화가 나는 것이다. 의무교육이니 공교육이니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인간을 길러내는 데 쓸모가 없는데, 철 지난 '전인교육' '예절' '윤리'따위를 운운하는 이상주의적 태도가 저 소년을 구원해줄 수도, 우리를 납득시켜줄 수도 없다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일 게다. 의무교육이 윤리성과 사회성을 키워준다니, 세상에 이렇게 웃긴 이야기가 어디에 있나.


물론 실제로는 분노하는 이들이 느끼고 과장하는 것 보다 의무교육의 중요성은 크다. 그것조차 없다면 우린 더 지옥같은 현실을 마주할 것이고 더 바보같아 질 것이다. 그리고 교육현장 모두가 사람들이 자극적인 언론에서 보듯이 다 무너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공공성이랍시고 강요되는 것은 항상 말은 그럴듯 하지만 지옥 같은 강요와 폭력으로 가득한 것들이었으니 이런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수 밖에. 홈스쿨링이니 사교육이니 하는 또다른 교육들에 공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