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를 함께 하느라 청춘을 허비했으나 아주 훌륭하고 의젓한 직장기계가 된 나와는 달리 지금은 요요인이자 백수(!)가 돼버린 Daeyeol Lee과 요 근래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20대 초반에 우리를 사로잡는 열등감 (혹은 열망)과 그것을 다시 어떻게 이어나갈것인가 하는 것이다. 최근 한달 반 가량 동안 세번 정도 만나서는 이 주제로만 이야기를 했으니 어지간히 이 주제에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요지는 이런 것이다. 그때 우리는 뭔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뭔가 되고 있다고,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서로 지적하고 지적받았으며(이대열이 나를 지적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멍청해지기 싫어서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영화를 봤고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쓰려 했다. 지금 보면 정말로 쓸데없는 허세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매일 밤 우리 자신을 증명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떨면서 정말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엄한 곳에 힘을 쏟다가 탈진해서 잠이 든다. 물론 대열이도 이런 뜻으로 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이해한 바는 그렇다.
2012년 7월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후 요 몇년간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볼때 드는 생각은 생활에 대한 희노애락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생활에 위협이 가해지면 사시나무 떨듯 무서워하고 생활이 안정되면 행복해하는 일의 반복. 그나마 올해는 훨씬 낫지만 정서적으로 상암동이 실감나지 않는 상황은 여전하다.
짤릴지 몰라. 여기를 벗어나면 나 어디로 취직하지?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월급 받아서 카드값을 갚아야지. 학자금은 어떻게 할까. 아 수영가고 싶다. 살아남고 싶다. 퇴근하고 싶네. 출근하기 싫다. 팀장님이 조직개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는 괜히 내 이야기 같고 짤리는 사람을 보면 내 발 끝이 천길 낭떠러지로 느껴져...수도 없이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수영에 몰입하고 요요를 다시 열심히 하려 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항상 유지하려는 노력이기도 했지만 퇴행의 증거이기도 했다. 현재를 도무지 실감할 수 없기 때문에 자꾸 다른 무엇을 찾으려 하는 게 아닐까? 역설적으로 꿈이 없기 때문에 꿈 같은 현실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늘 문득 했다. 추상성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구체성만 가득한 삶을 사는 게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의 퍽퍽한 삶이다.
2015년엔 꿈을, 추상을 찾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꿈이란 "나는 의사가 될거야" 라던가 "이번에 하는 마케팅을 성공시키겠어"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는 아닐 것이다. 내가 가장 최근에 꾼 꿈이란 아마 Hyunwoong Moon과 곽동건과 함께 "우리 다 같이 에딘버러에 가서 공연을 하고 싶다"라고 했던 그 막연하고도 설레는 느낌이 아닐까. 우리 같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 해내고 싶다. 그런 면에서 아직도 에딘버러를 졸업하지 못한 셈이다. 대열이가 얼마전에 지적했듯이 나는 에딘버러에서 "이 경험을 한낱 추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라고 했었는데, 그 말을 하는 때에도 나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경하는 학교 선배가 새벽에 자신의 직장에서 있었던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대해 말할때 "형 근데 저는 요즘 수영에 빠져서 살아요"라고 했을때. 그때 그딴 말을 한 나만큼 한심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며칠동안 한숨을 푹푹 쉬었고 지금도 자다가 이불킥을 한다. 이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싶지 않다. 꿈은 내가 정말 하고 싶어 몸이 달아 오르는 것. 그래서 그걸 위해 현실을 내가 이겨내야 하는 것으로 실감할 수 있게 하는 동기일 수도 있고. 이러이러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공적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런 꿈을 찾고, 내가 기존에 좋아하는 것을 부여쥐고 놓지 않아야 그저 그런 한국 사회의 아저씨가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많이 드는 2015년의 첫날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이 더 자주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공부없는 꿈은 없다.
여기다 왜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쓰겠는가. 이렇게라도 써야 아마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꿈을 꾸고, 추상을 찾고, 허세를 부리는 2015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