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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다] 책임감 있는 어른의 행복론 - 행복의 정복


 생일선물로 받은
 버틀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읽고 있다. 책의 내용은 버틀런드 러셀이 생각하는 "행복해지는 법" 강연이라 할 만한 책이다.

 근데 행복해지는 법이라니. 나에게 선물을 준 친구의 성향과는 전혀 다른 듯한(!) 자기계발스러운 책에 처음에는 의심을 가졌다. 행복이란 말 만큼 모두가 원하지만 미심쩍은 말도 없을 것이다. 요근래 이 단어가 수상한 냄새를 풍기게 된 건 그게 세상과 단절된 폐쇄적인 의미에서 쓰여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위 멘토라고 불리는 부르주아 승려,교수 등이 조건과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을 마치 모두가 지금 이 순간 가능한 것인 마냥 무책임하게 지껄이는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러셀이란 양반도 말년에는 정신이 나가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와 같은 미친 책을 쓴 것인가?


 하지만 제목이 자기계발서 같더라도 긴 시간 통용되는 고전은 항상 다 이유가 있는 법. 러셀의 행복론은 서두부터 다르다. 누가 철학자 겸 수학자 아니랄까봐 러셀은 책 문두에서 자신이 말하는 행복의 정복을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을 명확히 하고 들어간다. 사회구조로 인한 불행과 같이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불행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겠으며. 자신의 이 글이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어느정도까지는 자신의 마음먹기 따라 극복 가능한 수준의 일상적인 불행에 시달리는이들이라 정하고 그 이후에도 논의가 사회적인 문제를 짚은 것으로 흘러갈때는 글을 마무리한다. 책임감있는 태도인 것이다.


 물론 책 내내 그가 말하는 행복의 정복법에 대해서 "그것 또한 사회적 결과이다"라고 하거나 그 조차도 쉽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겠다. 맞다. 글을 읽어보면 행복에 대해 그는 내적인 집중이나 훈련이 아니라 세상과 타인과의 균형잡힌 소통. 다양한 종류의 취향과 평온함. 일의 중요성 등을 이야기하는데 결코 쉬운 방법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말과 해결들이 사회적 산물인가. 정말 유효한 방법인가 하는 점을 떠나서 내가 감명깊었던 것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목표와 대상과 적용 가능 범위를 명확히 하려는 러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끊임없이 문두에 "내 생각에는"이라는 말을 붙이는 한 노인의 태도였다. 사람은 이렇게 말 하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 더더욱 그렇다. 유명한 사람이면 더 심할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나의 주장이 일반론이라고 무의식중에 착각하며 그것이 그저 내 견해일 뿐이라는 생각을 잊곤 하니까.


 러셀은 말년에도 사회활동에 열의가 있었는지. 집회에 참가했다가 정부로부터 구류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정부가 노인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비판하자 러셀은 오히려 "나이가 들 수록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반응했다고 하니. 그런 분이 쓴 책 답다.

 때문에 이 책은 행복에 대한 욕구가 아니더라도 한 어른의 책임감 있는 글이라는 점에서도 꼭 읽어볼만한 가치있는 책이다. 좋은 책은 내용 뿐 아니라 저자의 태도에서도 배우고 새길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