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제부턴가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작게는 사이코패스 테스트라는 해괴한 심리테스트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흉악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붙이는 것까지, 언론이건 일개 트위터 유저이건 이 단어의 사용이 너무나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사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뇌의 공감대 형성 부분이라는 게 그렇게 명확하지도 않고 연구가 충분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싸이코패스라는 것이 마치 명확한 '공감영역'이 없는 괴물처럼 언급되고 있고. 2)사이코패스라는 것 자체가 실존하는지 조차 불분명하고 여러가지 인과의 나열이 있을 뿐 실존 자체는 더 연구가 필요한데 3)대중은 사이코패스라는 영역에 범인을 집어넣고 "우리같은 사람이 아냐"라고 안도하길 좋아한다고 한다.
이 말을 좀 더 간단히 정리하자면, 사이코패스라는 것 조차도 다양한 요인들이 존재하며 사람들은 악의 존재를 '우리같지 않다'라고 정의하고 안도하길 좋아한다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살인자론. “살인자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종자들이야. 우리랑 차원이 달라”
극 중 김종근(조성하 역)가 문호(이선균 역)에게 하는 저 대사는 사실 우리가 악, 혹은 싸이코패스를 대하는 태도 그 자체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정보를 보며 살기에 이제 범죄라는 것이 어느정도는 사회적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사건들에 직면했을 때에는 결국 당사자를 비난하기 마련이다. 너는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고. 100명이 배고프다고 해서 100명이 빵을 훔치진 않는다고.
화 차는 종근의 '살인자론'을 차분히 하나하나 반박해 나간다. 영화는 결코 "아..그녀는 불쌍했어"라며 누군가의 대사를 빌어 섣불리 차경선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뻔히 알지만 결정적 순간에 "그렇지만.."이라며 괄호에 넣어버리는 조건들, 그러니까 범죄기사에 있어 "용의자는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을 보냈고.."정도로 취급되는 한줄도 안되는 이유들을 화차는 설득력있게 그려나간다. 이 영화의 힘은 그러한 차분함에 있다.
이 이야기는 차경선이 왜 타인의 삶을 동경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강제가 있었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은 선택이라는 것이 화차에 올라타는 것 뿐임을 정말 너무 처절하게 끄집어낸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은 해서는 안되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모든 범죄는 100% 사회의 산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말일 것이다.
-사후적인 자유와 사전적인 자유
차 경선에게 어떤 선택의 순간이 있었을까? 설사 있다 한 들 어찌 알수 있었단 말인가? 그 모든 사건이 밝혀진 후에야 "당신은 선택의 자유가 잇었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전적으로 당사자들이 그걸 알 방도는 전혀 없다. 그 순간에 그녀가 살인이 아닌 무엇인가를 택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목숨을 건 도약 내지는 초인적인 선택이었을 터다. 그런것을 지극히 평범한 우리 자신에게 '응당 해야 할 것'으로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너무나 쉽게 말하는 도덕과 윤리란 얼마나 허망한가.
물 론 모든 악들이 그렇게 형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떠한 악들은 충분한 선택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즉 사전적으로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해지곤 한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악은 차경선처럼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단 하나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인을 긍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악행들이 어찌할 수 없는 필연성 혹은 애잔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봐야 할 것이다. 그 누가 화차에 스스로 올라타고 싶었겠는가. 차경선이 그러했듯. 악행의 이유라는 것이 거창한 욕망이기 보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 때문일 경우가 많이 존재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무엇 하나 선택할 수 없었던 삶 때문이라면. 사실 거기서 우리가 느낄수 있는 것은 분노보다는 끝없는 슬픔이다.
우
리는 차경선을 그저 긍정할수도, 그저 비난할수도 없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무언가 쉽게 말할 수 없다는 느낌'뿐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아마 자신의 삶 속에서 아무것도 선택할수 없었거나, 혹은 선택의 순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심지어 선택의
순간인지조차도) 사람들의 그 막막한 느낌과 어느정도 닿아 있을 것이다. 화차는 그러한 슬픔들에 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