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가 두려워서 이렇게 산다'라는 친구의 말을 듣다 보니 <록키>가 보고 싶었다. 이전에 <록키>를 처음으로 보게 된 것도 사실 그 친구 덕분이었다. 그때는 대충 봤던 이 영화를 시간이 나서 한장면 한장면 유심히 봤다. 그냥 그저 그런 성공스토리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록키,록키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나보다. 오랫만에 영화를 보다 울었다.
<록키>는 우리가 쉽게 생각하듯이 아메리칸 드림과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런 영화였다면 <록키>는 그저 70년대 반짝 유행한 영화로 끝났을 것이다. 록키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사람의 구원은 저 하늘 위가 아닌 결국 자기 자신과 타인으로부터만(에이드리안을 외치는 록키와 그런 록키에게 모자도 벗은채 달려가는 에이드리안처럼)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실베스타 스텔론 자신은 아메리카 드림을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하는 이 세상에, 30년이 지나도록 감동을 준다는 것은 불변하는 무언가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록키>는 우리의 삶을 값지게 하는 건 존재의 입증이고, 그건 꼭 승리만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꼭 세상의 방법이 아니어도 좋으니 어떻게든 견디고 또 견뎌내서 "15라운드에 종이 울렸을 때 두발로 서있으라"라고 록키 발보아는 이야기한다. 이렇게 써놓으니까 진짜 뻔한 이야기지만, 록키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 뻔한 이야기가 우리를 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혹자는 이걸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과도한 인정욕구라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내려는 욕구가 어디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미국에서만 존재할까. 그리고 그 입증의 방식은 꼭 화려하게 승리해야만,그리고 링 위에서만 가능한 건 아닐게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투쟁과 입증에 대해 다루는 영화 중 기억에 남는 건 <머니볼>과 <밀리언 달러 베이비>인데, <머니볼>이 '야구는 사랑할수밖에 없다니까' 라며 미학적으로 접근하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더이상 듣지 못 할때까지 누워있게 하지 말아줘요" 라며 슬퍼한다면 <록키>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게 덤덤히 그 투쟁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가장 힘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루져감성이나 낭만이 전부라는 것은 아니다. 승리하면 우리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입증된다. 그게 가장 빠르고 가장 명확한 방법일 것이다. 꼭 이기지 않더라도 우리의 존재이유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나는 믿고싶다. 그치만 최소한 입증하기 위해서 승리하진 못하더라도 우린 싸우고 견뎌야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결단의 순간과 싸움은 어느 세상, 어느 시간이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이 생각만으로 먹고 살 수 없는 이상 이런 본질적 한계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게 대기업이건, PD건, 어느 문화단체의 상근자이건 누구나 대동소이할 것이라 생각한다. 경쟁하지 않는 곳에 있다고 해서 싸움이 없겠는가. 나는 <록키>를 보고 나서 친구에게 '너도 싸우고 있는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공감은 별로 못할거 같지만. 모두가 위너라는 말은 결과론적으로 보면 기만적이지만 결국 '온전히 자신만의 것일 수 밖에 없는 삶을 싸우고 견뎌낸다'라는 입장에서 보면 탁월한 진실이 아닐까.
긴 세월을 견디어 내고 지금은 덤덤해진, 혹은 여전히 활발한 내 어머니와 할머니를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들이 부조리한 환경에서 힘들게 지내왔기에 안쓰럽다가 아니라. 그 무수한 세월을 견뎌온 꿋꿋함에 대한 존경심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아마 15라운드에 서있는 록키와 힘든 환경에서 어쨌든 버티는 이들을 보는 우리의 감정과 비슷한 것일게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결국 15라운드의 록키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요즘은 더 그렇다. 물론, 아폴로 크리드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