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의 연습 끝에 드디어 에딘버러에 가져갈 공연파트들이 정리가 되었다. 먼저 관객과 함께하는 파트를 위해서 우리가 생각해낸 것은 이전에 종종 써먹고 했던,1) 긴 줄에 요요를 실어보내서 풍선을 터트리는 파트와 2) 스핀탑을 이용한 파트였다.
전자의 경우 관객에게 풍선을 줬다 뺐는 식으로 관객을 참여시키기로 했다. 후자의 경우는 이전에 다른 거리공연팀을 보니 사진기를 가진 관객에게 자기를 찍어달라고 어필하는 파트들을 응용하기로 했다. 나와 대열이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잡은 뒤 무대로 그 관객을 데리고 나온 후, 스핀탑을 관객의 머리에 올리고 같이 사진을 찍기로 했다. 요요라는 게 저글링이나 마임공연같이 관객이 바로 즉석에서 뭔가를 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많아서 여기까지 생각해 내는 것도 우리팀으로서는 꽤 고역이었다.
두 번째로 대열이와 나의 캐릭터 강조를 위해서 오프닝을 하나 더 추가하고 투핸드 전에 새로운 파트를 만들었다. 오프닝의 경우 공연이 시작되면 대열이와 내가 같이 뛰어나가 대립구도를 형성한 다음, 그네->슬립->더블룹->더블 어라운드 월드와 같은 식으로 쉬운 기술로 대결을 한 뒤 원래의 오프닝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투핸드 전에 들어가는 파트는 현웅이가 번호판을 들고 나와서 대열이와 나의 투핸드 대결을 보며 채점을 해 주고, 대열이가 막판에 현웅이에게 뇌물을 먹이는 걸 목격한 내가 열받은 채로 프리스타일을 시작...하는 방식이었는데. 읽어보면 알겠지만 ‘연기’가 들어가야 하는 파트라서 이 부분을 연습하는게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다.
결국 나중에 가서는 못한다고 땡강을 부려서 대열이랑 싸웠고, 본 공연을 하기 전에도 과연 이 파트를 제대로 할 수는 있을까..하고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건이의 애환(!)을 강조하기 위해서 동건이의 요요에 대한 열정을 가로막는 ‘요요하고싶어요’ 파트를 추가!
어쨌든. 이렇게 파트들이 추가되고 공연 순서를 정비한 상태에서 포항에서의 공연과 대학로에서의 두 번 정도의 테스트를 거쳐 에딘버러로 가져갈 공연의 형태가 최종 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공연을 실제 돌려보니 현웅이의 보스로서의 캐릭터가 전혀 부각되지 않았고, 대열이의 역할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동건이의 반전이 어필이 잘 안되는데다가, 관객과 함께하는 파트들이 붕 뜨는 느낌이 있어서 순서를 바꾸고 현웅이의 비중을 좀 더 늘렸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결정된 순서는 다음과 같다. 실제로 돌려 보니 30~40분 사이가 나왔고 이 정도면 에딘버러에서 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을 듯 했다.
파트 | 내용 |
오프닝1 | 1.대열-동훈이 뛰어나오면서 쉬운 기술들로 대결을 펼친다. 2.현웅이가 호루라기를 불며 둘을 들어오게 한 후 오프닝 2를 준비 |
오프닝2 | 1.동건이가 레드카펫을 깔아준다 2.카펫 위로 현웅이가 걸어나오며 대열-현웅-동훈 오프닝. |
원핸드 | 오프닝2의 음악 후반부에서 대열이 원핸드 프리스타일 |
멘트 | 대열이의 간략한 팀원 소개 멘트 |
풍선 터트리기 (현웅이 진행) | 1.현웅이가 긴 줄 (2m 이상)로 가벼운 기술을 보여준 후 오프스트링 요요를 관객 쪽에 날린다. 2.요요를 주워다 준 관객에게 준비한 풍선을 선물로 준다 3.긴 줄과 다른 풍선을 준비. 줄끝에서 끝으로 요요를 실어보낸다. (줄 위에 올려주는 건 현웅이, 던지는건 대열이. 풍선은 동건이) 4.동건이의 실수로 풍선 터트리기에 실패 5.현웅이가 불같이 화를 내면 동건이가 관객을 가리킨다 6.관객의 풍선을 다시 뺏아온다. 이때 관객에게 사탕 혹은 요요를 준다 7.풍선터트리기 성공 |
오프스트링 | 무대가 정리 되는대로 바로 음악을 틀고 오프스트링 시작 |
사진찍기 | 1.오프스트링이 끝나면 대열과 동훈이 사진기를 든 관객에게 접근 2.사진찍어달라고 ‘어설픈 포즈’를 취한다 3.이걸 보고있던 현웅이가 호루라기로 주의를 준 뒤 ‘격렬한 포즈’ 4.대열-동훈이 그걸 따라한 뒤 사진찍어준 관객을 끌고 나온다 5.관객을 앉히고 현웅이가 스핀탑을 돌려 관객의 머리위에 올린다 6.대열-동훈이 관객 양 옆에서 포즈 취한 뒤 관객 들여보낸다. |
카운터웨이트 | 1.현웅이가 호루라기 불면 동건이 레드카펫 다시 깔아주고 꽃가루 뿌리기 2.현웅이 프리스타일 3.종료되면 현웅이가 다시 동건이 호출. 무대 정리 |
동건이 연기 | 1.동건, 레드카펫 정리하다가 놓여져 있던 요요로 기술 시도 2.대열이가 제지시키고 동건이 퇴장 |
투핸드 배틀 | 1.오프닝1에서의 음악 틀고 현웅이가 무대 중앙에 등장 2.동건이가 현웅에게 점수판 갖다주면 대열-동훈 뛰어나옴 3.번갈아가면서 투핸드 기술 하면 현웅이가 채점 4.동훈 마지막 차례때 대열이가 현웅에게 뇌물을 건넨다 5.동훈이 그것을 목격하고 현웅이에게 발차기(!) 6.현웅이가 당황하며 음악을 틀어주면 투핸드 프리스타일 시작 |
투핸드 프리 | 1.동훈 투핸드 프리스타일 2.끝나면 대열이를 도발한다. |
팀플 준비 | l.동건이가 대열이 무대를 시큰둥하게 준비 2.대열이 프리스타일 준비하고 있으면 동건이가 대열이에게 야유를 보내면서 뒤에서 같이 준비 3.음악 틀면 팀플레이 시작. |
롤러코스터 | 1.관객을 불러낸 후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긴줄 롤러코스터 동건이와 진행 2.동건이 중앙(!)에 요요 가격당하고 퇴장 3.관객을 동건이와 똑같은 자세로 준비하게 한 다음 롤러코스터 진행 4.요요 던질 때 엔딩곡 틀기 |
엔딩 | 전체 엔딩 및 동건이 솔로함 엔딩 |
그러나 솔직히 말해 출국 전까지 했던 공연의 성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당시 한창 더울 날씨라서 힘들어 많이 못했기도 했고, 이정도까지 했으면 거기 가서는 괜찮지 않으려나-하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뭘 더 할 수가 없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9개월을 주말 없이 살았던 것이다. 월화수목금금금월화수목금금금..
(포항 공연이 끝나고.)
공연 외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복장의 경우는 어떻게 할지 고민이 다들 많았다. 올드락 느낌의 가죽컨셉? 아님 그냥 캐쥬얼하게 티셔츠? 그래도 일생에 한번 있을 공연인데 특이하면서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복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빨간색을 드레스코드로 해서 대열과 나는 빨간 바지-흰 셔츠-검정 조끼-빨간색 보타이. 현웅이는 빨간색 마이,바지,보타이를(올빨강!) 동건이는 빨간색 피케티에 멜빵청바지를 착용하기로 했다. 동건이 빼고 다들 하체가 두꺼운 덕에 맞는 사이즈를 구하느라 인터넷을 엄청 뒤졌다.
(안산공연 당시의 복장과 에딘버러에서의 복장. 공연에서의 복장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소품의 경우 앰프,테이블,빅요,스핀탑,요요줄 다량,풍선,점수판, 레드카펫용으로 쓸 부직포 등을 구매했다. 다행히 대열이와 대열이 친구분들이 기부한 상금 덕에 온갖 소품들을 다 구매하고도 돈이 꽤 남았다. 레드카펫의 경우 기억에 남는 게, 피고 접는 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끝에 쇠파이프를 달기로 했는데 캐리어에 넣기는 길이가 길어서 현웅이가 어디선가 반으로 잘라오는 둥 준비하는 데에 애를 많이 먹었다.
자. 모든 준비가 끝났다. 각자 개인 여행 물품까지 모두 챙긴 뒤 먼저 현웅이와 내가 출국을 했고 뒤이어서 대열이와 동건이가 출발했다. 역시 요앤조이 아니랄까봐 우리는 탑승수속에 늦어 하마터면 출발을 못할(..)뻔했고 수화물도 체크도 허겁지겁 이루어졌다. 그것도 처음에는 캐리어 무게가 초과되서 박스를 구해다가 짐을 덜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우린 그게 출발과정에서의 마지막 트러블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큰 문제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최대한 싼 표를 산 탓에 도쿄에서 1박 후 환승하기로 일정이 잡혀있었고, 다행히도 현웅이 동생이 도쿄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그 집에서 1박 후 다음날 아침 나리타 공항으로 환승을 하러 갔다. 자. 이제 코펜하겐에 가서 대열과 동건을 만난 다음 같이 에딘버러로 들어가면 꿈에도 그리는 무대로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쉬크하게 마지막 통로를 지나 비행기로 들어가려던 현웅이와 나를 공항 직원들이 불렀다
“저기염”
“??”
“님들 수화물에 문제가 있어서 아직 탑승하시면 안됨”
“?!”
알고보니 우리가 박스에 실은 앰프가 배터리 폭발의 위험이 있어서 검색에서 걸린 것. 직원들이 우리 짐 속에서 앰프를 꺼내왔고, 혹시 배터리를 분리할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어설픈 기대 하에 드라이버를 빌려다가 앰프를 분해해 봤으나 본드로 범벅이 된 배터리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거 없이 공연은 어찌하나..이게 얼마짜린데 버려야 하나 등등 온갖 걱정이 밀려왔지만 절대 가지고 갈 수 없다는데 어찌하겠는가. 사람이라도 가야지. 눈물을 머금고 나리타에서 코펜하겐으로 날아갔는데, 코펜하겐 공항에서 환승 위치를 또 몰라서 두세번을 여권에 도장을 찍다가 겨우 대열이 동건이와 합류했다. 와이파이도 안되는 복지 개판의 사회민주주의 국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우리는 몇시간을 무료하게 기다리다 소형항공기를 타고 정말 드럽게 맛없는 샌드위치를 씹으며 에딘버러로 들어갔다.
(코펜하겐에서)
드디어 에딘버러. 오 에딘버러! 통일이 되어 평양을 가도 이보다는 덜 감격스러울 것 같은 에딘버러에 왔다는 뿌듯함이 너무 컸던 나머지 우리는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와 우리 공연하러 온 예술가들이라능!"이란 말을 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상태였다. (사실 그 말을 영어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대열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입국수속 때 목적을 물어보는 직원에게 “여행왔시여~”라고 말하면 될 것을, 드디어 자랑할 기회가 왔구나! 하는 기쁜 마음에 “에딘버러 공연하러 왔음 ㅇㅇ”이라고 자랑질 아닌 자랑질을 했는데.이게 또 문제가 되었다..
내심 우리 넷은 “오 니들 아티스트임? 잘왔음” 이라는 환대를 기대했는데. 매정하게도 딱딱한 표정의 직원들은 우리를 바로 통과시켜주지 않고 입국수속대 옆 의자에 우리를 대기시켰다. 직원들은 우리보고 에딘버러 참가증이 있어야 인정이 된다고 이야기했고 우리 중에 유일하게 영어가 되는 이대열은 우린 그냥 거리공연 참가라 그런거 없다. 그렇지만 그쪽하고 주고받은 이메일이 있다. 인터넷을 쓰게 해주면 니들 보여주마..라고 유창한 영어로 이야기했지만 직원들은 딱히 듣는것 같지 않았다. 돈 쓰러 온 애들에게는 관대해도 돈 벌러 온 애들에게 관대하지 않은 것은 신사의 나라 영국...아니 스코틀랜드도 예외 없는 만국 공통인 것이었다. 거기다 우리는 백인느님들 속의 황인종 원숭이들..결국 우리는 자격증명을 이유로 3시간 가량 대기하다가 결국 입국수속을 거부당하고 코펜하겐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다시 탈 수밖에 없었다.
는 훼이크.
(진짜 못들어가는 줄 알았다. 빵셔틀 같은 내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