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에는 입사 후 첫 발표를 했다. 큰 발표는 아니었지만 나름 오랫만에 하는 피티이기도 하고 사업부문 대표가 와서 보는 덕에 학창시절 했던 발표보다 훨씬 떨렸다. 나름 잘 해낸거 같았지만 현업에 가서 어떻게 하느냐가 결국 중요할 것이다.
아침부터 '컨택터스'라는 용역업체 때문에 난리다. 민간군사업체니 뭐니 하는 것을 보니 얼마 전 본 <두개의 문>이 생각났고 상도4동이 생각났다. 정권이 바뀌면 과연 컨텍터스 같은 업체가 없어질까? 자본에게 용역사업은 매력적인 수익창출 사업일수 밖에 없다. 그리고 수익을 창출 하는 한 민주당 정권이건 한나라당 정권이건 그 사업을 없애긴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점차 양극화되는 세상에서 철거와 탄압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공권력만으로 채우기 어려운 폭력의 자리는 점차 기업화 될 수밖에...따위의 생각을 하니 자꾸 우울해졌다. 용역업체에 복무하는 이들이야말로 소위 좌파들이 정말 목표로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화요일 밤에는 결국 그동안 유지되었던 파란 요요 클럽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생각해보니 98년에 만들어져서 도합 14년을 유지해왔다. 이제 들어와서는 자주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쩌다 찾아가 옛날 글을 보면서 추억을 되새기곤 하는 곳이었는데, 백업을 몇명이 신청했다고는 하나 예전같은 특정 공간은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 세상은 오프라인도,온라인도 삶의 흔적이 누적되도록 남겨두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삶의 공간이 없어지는 것에 비하겠냐만은 이것도 철거라면 철거일 것이다. 대마왕의 요요이야기나 내 중학생 시절 진상들은 좀 보존을 해 놓을 걸 그랬나보다.
왔다갔다 하면서 책과 잡지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노르베르트 볼츠의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와 로얄드 달의 <맛>을 읽었다.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는 생각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신랄한 내용들도 많았고(내가 나중에 좌파와 논쟁하게 된다면 써먹어봄직한) <맛>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과 같이 머리를 식히기에 좋은 소품집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도합 2시간 좀 못되니 그 시간에 주로 책과 잡지를 읽어 밀린 르몽드도 3부나 읽었다. 오히려 학교 다니거나 놀때보다 더 글을 잘 읽게 되는 것 같다. 쓰는 것은 잘 하지 못하고 있다.
신용카드가 신용문제로 발급이 되질 않아서 임직원용 체크카드를 신청하려 했더니 너무 절차가 복잡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자금 연체 좀 하지 말 걸 하는 작은 후회를 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내 성격에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그 결과야 뻔하다. 할부에 할부...성실히 살라는 국가의 계시로 알고 참아야지.
목요일에는 교육의 일환으로 오프라인에 나가 티켓을 팔았다. 땡볕에 티켓을 팔려고 하니 머리가 띵 해져서 적극적인 판매를 포기하고 지인판매(!)를 진행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팔진 못했지만 고맙게도 왕주형이 10장을 사주었다. 판매를 진행하고 카페에 가서 팀원들하고 수다를 떨고, 그날 일정을 돌아와서 마무리했다. 퇴근 후에는 도둑들을 봤다. 전지현보다는 역시 김혜수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의 액션씬이 너무 인상적이었고, 허점이 몇가지 보였지만 크게 나무랄 정도는 아니었다. 더운 여름 날 이런 유흥영화도 하나 있어야지.
금요일에는 근무를 마치고 왕주형에게 티켓을 전달해주러 갔다. 집에다 티켓을 놓고 나와 퇴근 후 들려서 티켓을 가지고 다시 안양으로 갔다. 왕주형과 안양 유원지 안의 보리밥집에서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2시간 가량 수다를 떨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거의 내 이야기만 한 것 같다. 사회초년생의 걱정,요요동의 최근 근황. 이런 저런 이야기를 왕주형은 참 잘도 들어줬고 요요동 이야기를 할 때는 둘 다 이 걸 알게되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주 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갔다.정말로 자주 보고 싶다. 이제 직장생활을 하니 스케쥴도 고정되어있고, 그럼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집이 너무 더워 결국 에어컨을 사기로 했다. 토요일아침에 당일 설치를 목표로 하이마트를 찾아갔지만 2~30정도를 생각했던 6평짜리 에어컨은 무려 4~50만원 대였고, 설치는 보름 후에나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중고샵을 돌아다녔는데, 그야말로 작열하는 태양 밑에서 1시간 가량을 돌아다니니 정신이 멍해졌다. 세군데 정도를 돌아다닌 끝에 설치비 포함 28만원에 설치할 수 있는 에어컨을 발견해서 구매를 했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it's kind of a funny story>라는 영화를 봤다. 우울증을 겪는 중학생이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하여 겪는 일을 그리는 영화였다. 기분이 조금 울적할때 보면 기분 좋아질 만한 영화지만, 나이가 좀 들고, 그리고 너무 우울할떄 보면 오히려 다른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되서 더 우울해지기 쉬운 그런 영화였다. 삶에 대한 희망과 제한없는 욕심도 사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보면. 그런 용기들을 북돋아주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젊은이를 보면서 늙은이는 항상 슬플텐데.
일요일에는 에어컨 설치하시는 분이 생각보다 훨씬 일찍 와서 한번 착오가 있었다. 주인할머니가 돌아오시는 1시쯤에 다시 와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점심을 먹고 에어컨 설치를 지켜봤다. 원래는 옥상에 달기로 한 실외기를 그냥 창문에 설치하기로 했다. 집에 저녁 늦게 돌아와 에어컨을 켜보니 생각보다 출력이 약해서 좌절했다. 에어컨을 틀고 자 보니 그나마 아침엔 살짝 추울 정도라서 교환이나 수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출근을 해서 콘테스트를 대비한 새 조를 짜고, 다시 친해지기를 시도했다. 어쩌다보니 스토리텔링 제출 담당이 되어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일을 하기 싫고 의욕없는 이들이 광합성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떨까.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얼마전 산 <젊은문학상> 작품들을 읽으며 다시한번 좌절에 빠지고,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란 결국 항상 '소설'의 형태로만 사고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염두에 둔 스토리란 결국 다른 형태여야 하는 것이다. <젊은문학상>뿐 아니라 보르헤스의 <픽션들>과 <긍정의 배신>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감정자본주의> 등 5권의 책을 샀다. 목표는 8월 중에 이 책들을 다 읽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을 유용하게 써야 하겠지.
수요일에는 계속되는 몇명의 지각생들로 인하여 내일부터 정장을 입고 출근하라는 벌이 내려졌다. 나는 집단 벌칙이야말로 가장 비열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결국 이것은 그 사람을 미워하게 만들고 원망하게 만든다. 정작 나쁜 것은 개인의 책임을 집단에 묻고, 집단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사람일텐데. 우리는 너무나 약하고 너무나 즉물적이어서 지각한 사람을 욕 할 수밖에. 사실 엄밀히 말해 그게 문제를 해결하는 제일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0.9씩 일을 하는 것 보다 1.1씩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덧셈과 곱셈의 차이로 설명하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보면서 이 세계에서는 참 비합리적인 것을 합리적인 듯 보이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에 대한 온갖 부정적 상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면서 정작 거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들은 무한한 긍정을 요구한다.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그게 가능할리가 없다. 결국 나도 저렇게 될까? 사실 모두가 그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결국 우리의 관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오타쿠가 취향의 세계에 빠지는 이유가 현실과 허구를 구분 못해서가 아니라 그 세계가 자신의 관계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과 같은 이치일거라 생각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좌파들의 글을 보며, 문득 어차피 여기에 없는 허구적인 것을 지금 기다리며 인내하고 행동하라 말하는 점에서는 좌 우 모두 같다고 생각했다. 우파가 보다 실용적으로 보이고 좌파가 보다 과학적으로 보이지만. 그 차이를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감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