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공연

위키드

leedong 2012. 9. 21. 18:01

 뮤지컬은 원래 그 장르의 본성 상 밝은 내용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앙상블을 이뤄야 하는 공연에서 마지막까지 반목하고 갈등하며 비극으로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때문에 뮤지컬은 뭔가 상당히 '미국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밝게 꿈이나 사랑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비극 뮤지컬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뭔가 어감이 이상하다.

 밝음을 지향할 수 밖에 없는 장르적 한계. 그리고 노래를 안고 가야 하는 본질 상 깊이있게 주제를 다루기 어렵기에 뮤지컬은 자칫 얕은 내용에 빠지기 쉽다. 스토리의 깊이나 감동을 놓친 채 음악으로만 승부를 보려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최근에 관람했던 <맨오브라만차>의 경우도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가 교차되는 훌륭한 서사구조와 비극적 면모를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뭔가 모를 맹목적 긍정성에 빠져 그 명성에 비해 나에게는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사실 대부분의 뮤지컬이 다 그렇다. 연극이나 영화만큼 깊은 묘사를 해내기가 어렵다. 또 어찌보면 뮤지컬이 그런 것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음악적 완성도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과 내용 모두에서 깊이를 끌어내는 작품들이 종종 있다. <빌리 엘리어트>와 가장 최근에 본 뮤지컬 <위키드>다.

 사실 나는 <위키드>를 보기 전에는 그것이 미국작품인 탓도 있었거니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뮤지컬이라는 것이 본질을 찌르는 깊은 묘사 보다는 스펙터클에 의존하기 쉽다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삶에서 처음 본 소극장 뮤지컬은 <지하철 1호선> 대극장 뮤지컬은 <빌리 엘리어트>이기 때문에 더 기대를 안한 것도 있었다. 뮤지컬에 대한 내 첫 인상을 결정지어 버린 것이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성취를 이루어낸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무엇을 봐도 내 취향에 안찰 수 밖에.  그러나 <위키드>는 이런 내 취향에 딱 맞는 작품이었다. 정말로!

 <위키드>는 미국산 뮤지컬 답게 스펙터클한 연출이 돋보이고, 또  많은 이들이 또 이런 스펙터클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어디까지나 <위키드>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도구로써만 역할을 다 할 뿐이다. 이 작품에서 어떤 이는 사랑을 보고 어떤 이는 슬픔을 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우리는 이 작품을 보고 나서 한 개인이 자신의 신념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의지를 가져야 하고, 어떤 고통을 겪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키드>의 대표곡 "define gravity"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삶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결국 중력의 영을 극복해야만 한다는 것.

"나는 춤출 줄 아는 신만을 믿으리라. 그리고 내가 나의 악마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악마가 엄숙하며, 심오하며, 장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중력의 영'이다. 그로 인해 모든 사물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분노가 아닌 웃음으로 죽인다. 자, '중력의 영'을 죽이지 않겠는가?"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중력을 이겨내라. 그리고 신념을 지켜라. 주제는 정말 심플하다. 수많은 작품들이 같이 이야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키드>가 다른 작품들 같이 단순히 의지나 꿈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말하지 않고 끝나지 않는 이유는 세가지이다. 첫번째로는 캐릭터가 너무나 입체적이다. 인물들이 가진 신념은 끊임없이 도전받고 흔들리고 다시 서기를 반복한다. 두번째로는 <위키드>는 주인공 엘파바의 강한 의지 뿐 아니라 그러한 선택으로 인해 어떤 수모를 겪고 어떤 외로움을 겪는지에 대해서까지 짧지만 성심 성의껏 이야기 한다. 인과응보가 없는 이 잔인한 세계는 긍정적 세계를 다뤄왔던 뮤지컬에서는 이례적이다. 마지막으로는 여러 장면의 훌륭한 연출들 덕분. 특히  엘파바가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키려 하는 장면의 연출은 정말 놀라울 정도, <빌리 엘리어트>의 Angry dance만큼의 충격이 있다. 사실 눈 앞에서 그러한 스펙터클이 직접 펼쳐지는 효과란 아이맥스에서 영화를 보는 수준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내용만큼이나 형식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뮤지컬이기에. 충분히 더 많이 해야 할 이야기는 2막에 들어서 축소되고 급 진전되며 앙숙들은 금새 앙상블을 이룬다. 그러나 그런 맹목적 조화 속에서도 위키드는 끝까지 어떤 아릿함과 비극적인 모습을 안고 간다. 처음과 끝에 흘러나오는 "선은 악의 고독을 알지"라는 가사가 의미하는게 참 많은 작품. 뮤지컬도 충분히 깊은 울림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환상적으로 증명해낸 또다른 명작.

 *매번 느끼지만 이런 좋은 작품을 더 많은 이들과 같이 볼 수 없다는 게 항상 문제다. 정말 이런 작품이 주는 힘이 필요한 이들은 작품들과 가장 먼 거리에 있다.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