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20131224] 성격 나쁜 계약직과 거만한 정규직.

leedong 2013. 12. 29. 23:05

 




  세상에 많은 이들이 있고, 우리 모두는 사람들을 만나며 장점을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호감이 안가는 이들이 있다. 요즘 나와 같이 일할 일이 많은 타 회사의 사람도 그런 사람이다. 같이 일을 할 상황이 많다 보니 의사소통 할 일이 많고, 그럼 열에 아홉은 그는 상대의 속을 긁고 물어뜯는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그런 그의 신경질이 지난주에는 극에 달해, 결국은 나도 싫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왜 처음과 말이 다르나요. 제가 지금 안하겠다는 게 아니라 절차를 밟아서 진행하자는 거잖아요. 등등. 

  나중에 언뜻 들어보니, 실적 부진으로 인하여 예정되었던 정규직 전환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실적은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광고주 관리나 실적 문제로 계속 신경이 쓰여 원래 예민했던 그의 성격이 더 날카로워졌고, 그로 인해 한주 내내 신경질을 내고 초조해 했던 것이다. 그런 상태가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또 그의 평가는 낮아지고. 그런 악순환을 근 한달이 넘는 시간 반복했던 거다.

  이 이야기를 같이 듣던 어떤 이는 "계약직이면 적을 만들지 말아야지.."라고 안타까워했다(혹은 어이없어 했고) 그 말에 가슴이 답답해진 나는 딱히 할말이 없어 얼른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 말을 한 이가 딱히 어떤 편견을 가지고 말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 경험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가 조직생활을 하며 흔히 듣는 '같이 일하기 편한 사람이 좋다'라는 이야기 같은 것일 게다.

  근데 조금 생각해보니 참 이상하다. 그 사람이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의심많은 성격이라지만. 실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는 나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건실하다. 기업이 그리 신봉하는 실적에서 본다면 나야말로 계약직이어야 하고 그는 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 할애비라도 되어야 한다. 

  물론 예민한 성격이 의사소통에 불편한 성격인 것은 사실이고. 그의 짜증스러운 태도들이 여러가지로 영향을 미쳐 결국에는 목표 실적 달성에 실패하게 만든거라고 볼 수도 있다. 그가 몸 담은 곳이 실적에 있어서 내가 있는 곳보다 더 까탈스러운 면도 있다. 하지만 그가 하는 걸 보니, 협력관계인 이들에게는 짜증을 좀 부려도 광고주(갑)에게는 딱히 짜증을 내지 않는 것 같고 곧잘 한다. 그럼 대체 뭔가?

  기업은 항상 숫자와 실적을 강조한다. 항상 정성보다는 정량이며, 시도보다는 영업이익이다. 근데 기업은 어떤 경우에는 조직의 이름. 상사의 이름. 동료의 이름으로 인성을 문제시 삼는다. 아 저 친구는 피곤해. 여자는 안돼. 일은 남자랑 해야지. 일단 시키는 거 잘하는 애들이 좋아 등등. 

  물론 다르게 말하면 그가 성격의 문제를 극복할 만큼 압도적인 실적을 내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참 이상하지 않은가. 조직은 물론 같이 어울려 지내는 곳이기에 (한국사회에서 포괄적인 의미로) 성격이 좋으면 지내기도 좋다.

  노동자들이 잡담떠는 것도 시간낭비로 보는 조직들 스스로가 말하듯 이곳이 일을 하기 위한 곳이라면, 성격의 문제로 노동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일일까. 평가자의 기준을 평가자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순간. 살아남을 수 있는 평가자들은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격미달의 평가자들이 헛되게 수많은 이들을 괴롭힌다. 

  노동의 조건은 비단 객관적인 임금과 복리후생의 문제 뿐 아니라, 노동의 안정감을 통해 같이 모여있는 노동자들의 평화로운 상태를 보장해주는 것 또한 포함할 것이다. 팀워크를 강조하지만 조직은 결코 팀워크로 움직이지 않고 개인 실적을 요구한다. 개인 실적을 추구하는 조직에서 팀워크가 생겨날 리 없다. 정규직과 계약직이 동일한 일을 함에도 다른 처우에 놓여져 있다면 그 조직의 근본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후회,죄스러움,갈증,짜증 등의 감정들일 뿐이다. 그런 감정을 저변에 깔고 끊임없이 갱신되는 숫자로 표현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는 게 어떤 인간성을 담보해줄 수 있을까. 

  닥쳐오는 개편에서 계약직 선배들이 '너는 공채니까 안짤리잖아' 라는 농담을 던지면 나는 웃을 수가 없다.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일을 잘하고 프로페셔널하다. 그런데도 정규직이 어떤 '노력'과 '실력'의 문제인가?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게 만든 것은 '계약직이면 적을 만들지 말아야지'라고 하는 말에서 느껴지는 어떤 섬뜩한 선의와, 그것에 다소간 공감하는 내 자신이다. 인간의 노동 조건은 인성과는 깊게 결부되지 말아야 한다. 같은 일을 한다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그런 권리들을 갖는 데 있어 인간 개인 스스로가 선택할 수 없던 성격이라던가, 출신이라던가, 외모라던가 하는 것들을 조건으로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배워오고 또 믿어 왔다. 

  하지만 그런 기준들이 순간순간 일상의 경험속에서 갑자기 무너지고, 갑자기 다시 단단해진다. 그리고 편견은 경험을 먹고 단단해진다. (지속되는 불안정으로)성격 더러운 계약직 동료직원과 (운이 좋아 선택받은)거만하고 허세 가득찬 정규직 동료직원과 같이 일하는 것보다 더 신뢰있고 강렬한 경험이 어딨을까? 

  근데 우리는 너무나 바쁘고 정신이 없어, 우리의 경험을 보편적인 무엇으로 신뢰하기 쉽다. 사람들의 삶이 자유롭질 못하니, 개인의 힘으로 할수 있는게 별로 없다. 그로 인해 굳어진 경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편협하게 만드는 시대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편견을 만들어준 그 어떤 특수한 인간군상들이 결코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님에도 마치 개인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 처럼 보이는 시대다. 인간성이라고 불리는 그 무엇을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이 많은 경험 만큼이나 많은 공부를 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