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0121] 흩어지는 이야기들.

leedong 2014. 2. 2. 19:02




 티비를 정말 안보는 편이지만 KBS2의 <안녕하세요>를 즐겨보는 편이다. 재밌고 기발한 사연도 많지만 '와 저거 그냥 저렇게 넘어갈 문제인가..'할 정도로 어이 없는 사연도 많다. 근데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심각한 문제들의 열에 아홉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정말 특이한 사람들의 사례이기 전에, 대부분 우리 사회의 상황으로부터 나타난 증상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아빠한테 어렸을 때 너무 맞아서 아빠랑 소원해진 아들이라던가, 병원도 안믿고 비타민만 먹이는 엄마라던가. 둥치이기보다는 열매이고, 그 열매의 밑에는 어떤 공통된 뿌리들이 존재하는 듯 보일때가 한둘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쉽을 즐기는 것은 인류 고래의 습속이다. 그렇더라도 한때는 개인의 사례들을 사연으로 취급하기 이전에 하나의 징후로서 파악하려 하는 노력들이 있었다. 그런 노력들이 소수이긴 하나 존중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어떤 순간에는 그러한 노력들이 타인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사는 이 곳, 이 순간에는 분명히 사회적인 증상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그저 특이한 개인의 사연으로서 소비되는 방법 말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방도가 없어 보인다. 물론 그런 방식이 어떤 응축력이나 메세지를 가지기란 쉽지 않다.

 이 프로그램을 계속 보고 있다 보면 슬퍼질 때가 있는데, 사연의 마무리 단계에 사연자들이 무대를 떠날 때다. 어떤 사연자들은 무덤덤한, 혹은 답답한 표정으로 화면에 잡힌다. 그 순간 그들의 표정이야말로 한데 모여서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데 실패한 사연들의 모습 그 자체이다. 예전에 <안녕하세요>를 주제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자신의 어떤 강고한 믿음이나 행동 습속이 <안녕하세요>에 나가서 웃음거리가 된 후 자살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거 말이다.

 MC들이 말하고 출연자들이 말하는 어떤 사연들은 분명 지금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공통적으로 가르키고 있다. 사람들의 삶이 지나치게 팍팍해. 차별이 너무 심해.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어. 노력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아.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증상들은 그저 이상한 사람들의 사사로운 이야기로 요약되었다가 흩어지고 사라진다. 고민들이란 오로지 사적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교훈일지도 모르겠다.

 예능이 무슨 거창한 사회적 의미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꼰대라며 백번 비웃음을 당해도 싸다. 그러나 우리 대다수가 보는 문화상품이 보여주는 특정한 양상들이 우리가 사는 방식과 취향과 시대의 결을 나타내고 있다는 주장까지 비웃음을 당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녕하세요>는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과,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책임이 아닌)고민들을 다루고 대하는 방식에 대해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