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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국제적 표준화와 민주주의 (기말레포트)

leedong 2012. 4. 29. 15:07

-들어가며.

종 종 80년대의 운동권 선배들과 술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그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지금의 대학생들의 생활은 분명 자신들이 대학을 다닐때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느냐 긍정적으로 보느냐는 개인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취업을 위한 자기계발에 쏟는 시간이 극단적으로 많아졌고, 고용이 불안정해서 대학생활 자체에 사회의식을 가질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얼마전 개인적으로 조사했던 운동권 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현재 운동권의 쇠퇴의 가장 강력한 이유로서 경제적 이유를 제기했다. 취업 자체가 어려워지고 여유가 줄어들면서 먹고사는 일 외의 다른 부분에 신경쓸만한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운동 재생산의 실패에는 운동권 자체의 문제도 존재하겠지만 이런 경제적 요인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비 단 이런 제 3자들의 증언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각박해진 현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모든 것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세상이 되어버렸다. 취업도,실업도,교육도. 심지어 건강의 문제 까지도 지금 이 시대에 스스로의 책임이 아닌 것은 없다. 학비는 내가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아서 해결하거나 국가에,혹은 은행에서 빚을 받아서 해결해야 하는 대상이다. 새로운 사회의 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소설가 김훈의 말을 빌자면 우리는 이제 “먹고 살기 위해 굴욕을 견디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험난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조직적 활동이나 제도에 호소하기 보다는 우리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여 각개돌파 하는 쪽으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사회 어느 곳을 둘러봐도 가장 찬양받는 존재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을 키워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자수성가형 인간이고, 가장 비난받는 존재는 자기의 인생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해 사회로부터,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저 유명한 마가릿 대처의 말처럼 “더이상 사회 따윈 없는”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개인을 너무나도 자유롭게, 그리고 철저히 고립시킨 이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을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곤 한다. 모두가 경쟁력 재고를 외치고, 글로벌 시대를 외치며, 보다 완벽한 자유시장 체제에서의 경쟁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행복에의 약속에 비해서 딱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 렇다면 이 모습은 과연 항상 있던 모습일까. 이 완벽한 자유의 상황에, 모든 것을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이 세상은 그동안 흘러왔던 인류 역사의 발전의 단계 중 하나일까? 선배들은 자신이 지냈던 90년대의 상황과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러한 구조가 너무나도 익숙하다. 불안은 만성화 되어있고 일상화 되어있다. 지금 레포트를 쓰는 상황 조차 이 무한한 경쟁 체제 내에서 좀 더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의 일환이 된다. 신자유주의의 열렬한 전도사를 자처하는 대한민국 정부-문민정부 이후의 모든 정부들-들과 각종 신자유주의의 구루들-기업가들,강연자들,유명 저자들-은 이것이야말로 개인의 행복을 극대화시켜줄수 있는 최적의 체제라 이야기한다.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은 시장을 왜곡하는 힘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고 아직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완벽하게 왜곡시키는 힘 없이 존재한다면, 모든 자원은 합리적으로 분배될 것이고 우리는 보다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것을 특정한 제도-사회복지라던가-로 해결하는 것은 개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위배하는 행위들이기에 고려되서는 안된다. 신자유주의의 최전선에 서있는 미국에서의 의료보험 도입에 대한 반발과 부자 감세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머뭇거림은 이러한 태도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분 명 지금의 모습만 봐서는 20세기를 호령하던 케인즈 경제학과 사회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패잔병들처럼 보인다. 우리가 현존하는 질서를 볼 때 그것이 부조리하고 고통스러움에도 어찌 할 줄 모르는 이유는 이 질서가 역사의 과정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과학적이기에 남은 단 하나의 유일한 체제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다른 대안들이 사라져버리고 남아있는 단 하나의 신자유주의는 좋든 싫든 우리가 선택해야 할 단 하나의 현실이자, 자연스러운 질서가 된다.

 

그 러나 그 현실이 자연스러운 역사의 발전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노력의 산물이라면 어떨까? 그 흐름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현실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인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최후에 승리한 체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투쟁의 과정에서 자리잡은 사상이고 언제고 다시 뒤집어 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 부조리한 체제가 결코 우리에게 남은 단 하나의 현실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 리는 과학이나 사상의 흐름을 진화의 과정으로 보곤 하지만, 가스통 바슐라르나 토마스 쿤 등은 지식체계.과학의 발전은 객관적으로 올바른 것을 발견하여 택하면서 누적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들이 서로서로 경쟁하면서 선택되고, 그 결과 인식론적인 단절이 일어나면서 ‘혁명적’으로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렇게 본다면 과학이란 결국 독립된 객관적 실체에 관찰과 실험을 통해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틀 자체가 이처럼 사회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런 사회적 구성 요소들을 살펴보는 것이야 말로 본질과 흐름을 이해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 된다.

 

그 렇다면 지금 현재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지식 체계를 누적진화의 결과물로 보는 것은 그 지식이 선택되는 과정에 있었던 다양한 사회적 권력 관계를 은폐하고, 새로운 대안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일이 된다. 우리가 이 답답한 신자유주의 질서를 보면서 살펴봐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두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적 삶과 세계를 인식하는 틀을 변화시키는가? 하는 점과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가? 하는 계보학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글에서 살펴보는 것은 두 번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단순히 학문적 공동체간의 싸움을 넘어서서, 학문적 공동체의 싸움을 각 편에서 지원해주는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의 지원과 그들간의 투쟁을 봄으로서 우리는 이 기괴한 시대정신이 어떻게 지배적 위치를 차지했는지 보다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정의처럼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기에, 투쟁하고 있는 존재들이 어떠한 사회적 관계를 가졌는지, 그것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살펴볼때만이 그 계보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볼 수가 있을 것이다.

 

때 문에 이 분석에 있어서 우리는 부르디외가 주창한 ‘장’과 ‘오몰로지’의 개념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규칙과,자본. 그리고 그것에 따라 형성되는 위계서열을 갖추고 그 서열 내에서 투쟁이 일어나는 사회적 영역인 ‘장’과 한 장을 넘어서서 다른 장과의 적극적 동맹을 통해 투쟁을 강화하는 오몰로지를 가지고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흐름을 분석한다면 신자유주의의 승리의 과정이 물흘러가듯 일어난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인위적 투쟁의 결과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렇다면 우리는 신자유주의 중에서도 무엇을 살펴봐야 하는가? 신자유주의를 정의하는 말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집회 때마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마치 만악의 근원을 야기한 존재처럼 쓰여진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분석이 되는 신자유주의를 그런 총체적 개념으로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는 이제 경제적 용어를 넘어서 지금의 시대 전체를 지배하고 작동시키는 여러 장치들과 정신의 총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 러나 무엇보다도 이 정신의 핵심은, 시장에서 비롯된 자율적,적극적 선택의 원리를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시장의 영역으로 넘기지 않았던 모든 부분들, 넘어갈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부분들이 하나 둘 씩 시장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국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온 복지와 형벌. 심지어는 인간의 가장 본원적인 요소인 DNA까지도 시장의 대상이 된다. 우리의 모든 삶은 이제 시장의 것이 되었다.

 

그 렇다면, 신자유주의의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그 핵심을 구성하는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을 살펴보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70년대 이후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신고전학파.통화주의 학파의 흐름을 살펴봄으로써 시작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어떤 위치에 있었고, 누구랑 싸웠으며 어떻게 승리를 거뒀는가를 살펴본 다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주된 내용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전 : establishment와 케인즈주의.

 

지 금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통화주의 경제체제이지만, 이 전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운용 방식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바깥에 사회주의라는 강력한 대안이 존재하고 있었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영역 내에서도 단일한 흐름의 운영방식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80년대가 되기 전까지 자본주의를 운영하던 방식은 바로 케인즈주의라 불리는 수요자 중심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존 메인너드 케인즈가 만들어낸 이 경제학은, 이전의 고전적 경제학이 시장의 방임과 작은 정부, 공급자 중심을 강조했던 것에 반하여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시장의 적절한 통제, 그리고 수요자를 보조하여 유효수요를 창출해내 경제를 선순환시킨다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방법을 주장하고 있던 경제학이다. 이 방식은 꼭 그것이 케인지언으로서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히틀러 치하의 제3제국이었건, 자유주의의 기수를 자처하던 미국이었건 간에 20세기 전반을 가로지르는 경제 운영 방식이었다. 물론, 이것은 사회주의처럼 시장의 완전한 복속이나 계획경제를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당시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자본주의 경제 운영 방식에서는 가장 사회주의 적인 것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이 경제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한 존재들은 바로 미국의 동부지역 귀족들, 즉 동부 Establishment들(이하 Est.)들이었다. 이들은 미국개척 이후 형성된 미국 전통의 초 엘리트들로서 몇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대부분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각 영역의엘리트-법조계,자본가,교수 등-들이었고, 명문가 출신들의 배타적인 동부의 IVYLeague 대학 출신들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특성중 하나는 박애주의의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미국의 초기 자본주의 역사 과정에서 불거졌던 자본들의 횡포에 대해서 사회적인 제재가 가해지자 자본들이 이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자산 일부를 다양한 형태로 사회에 기부하는 형태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은 정부를 통한 사회적 역할과 국제질서에의 기여 등을 중시하기도 하였다.

이 들의 이런 적극적인 박애주의 전통, 국가와의 연계성을 생각해본다면 이들 대다수가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던 케인지언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케인즈주의만큼 이들의 성향과 전통을 뒷받침 해줄수 있는 학문도 드물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케인즈주의는 Est의 학문이라고 해도 무관할 것이다, 케인지언의 대부분이 가문과 전문성을 등에 업은 전후 미국의 최고위층들이었기 때문에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경제학 또한 케인즈주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전후 경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일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유럽이 초토화가 됨에 따라 전 지구적 경제체제에서 미국이 전후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국제 자본주의 질서에 있어서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미국이 선택한 방법은 결국 잿더미가 된 유럽을 복구하여 유럽의 구매력을 증진, 세계시장을 재생해낸다는 것이었고, 이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케인지언 성향의 동부 Est들이 결성한 CFR이라는 조직이었다.

 

Grand Area라 불리는 종전후 미국의 영향 아래 놓여질 지역들에 대한 복구 작업의 과정에서 CFR을 통해서 Est들의 사상과 이익이 관철된 World Bank(이하 WB)와 IMF등이 건설되는데, 지금 우리가 이들에 대해서 갖는 인상인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라는 인상과는 달리 Est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던 80년대 전 까지의 이 브레튼우즈 시스터들은 수요자 중심 경제학이라는 케인지언의 이상을 실현하는 정책들을 주로 펼쳐왔다. 예를 들면 IMF는 세계경제 재건 과정에서 금융 투기를 통한 국가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각국 통화량을 감시하고 유동성 위기를 체크하는 역할을 했다. WB는 Project Loan(이하 PL)을 통해서 개발도상국과 전후 유럽국가들 이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에 많은 자본을 제공해왔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단순히 케인지언이라는 학문의 장 뿐 아니라 산업에서 전통적인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록펠러,포드와 같은 Est들, 금융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릴린치,JP모건과 같은 Est들 등과의 오몰로지를 통해서 같이 이루어졌다. 하버드에서 아무리 케인즈주의의 유효성을 외쳐도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산업,금융,정부,언론의 지원이 없이는 케인지언들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오몰로지들은 이후 살펴보게 될 신자유주의 학파의 역사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비슷한 환경과 비슷한 학력 그리고 각 장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슷한 위치에 따라 동맹을 형성하고 각자의 장에서 투쟁을 하며 상호협력 하는 것이다. 이런 강력한 케인지언의 지배적 위치는 70년대 후반까지 계속된다.

 

-Counter Establishment의 부각.

 

그 러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지배적 지식체계는 투쟁의 산물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뒤집어 말해 현재 지배적인 사상일지라도 언제고 투쟁을 통해서 다른 지식으로서 뒤집어 질 수 있다. 실제 이런 투쟁의 흐름이 70년대 1차 석유파동과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나타난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와 국제적 위상의 약화에 따라 점점 강해진다, 케인지언,명문가,Ivyleague중심의 Est들에 대해 반발하는 Counter Establishmnet의 흐름이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학문,산업,금융 각 장 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Est에 대해 열세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들의 투쟁은 계속 이어져왔지만 국제적인 위기를 기점으로 그 공세가 강해지게 된다.

 

이러한 엘리트들을 비판하는 Counter Est의 중심에 서있는 단체들은 몇가지가 있었는데,표로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세력

특징

시카고대학 통화주의학파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 주장

신세대 Est 좌파계열

Est의 전쟁 비판.

시민권론자

각종 소수자의 권리획득 운동.

아나키스트 분파

모든 문명 거부. 공동체운동

신세대 Est 우파계열

(험프리 민주당원/진 커크 패트릭)

Est의 공공성 중시를 좌익성향으로 판단.

자유주의의 전통을 Est가 악화시킨다.

뉴욕 트로츠키 좌파

처음에는 스탈린주의라는 공통의 적 때문에 전통적 Est나 신세대 Est 좌파계열과 동맹관계가 결성되나 반전문제 등으로 분열. 이후 신세대 Est 우파계열과 동맹.

 

표 에 제시한 단체들 중 이 글에서 중요하게 살펴볼 것은 특히 첫 번째, 시카고대학 통화주의 학파이다. 이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통화주의라는 독특한 학파를 형성했으며 이후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위치를 차지했는가를 위의 Est를 분석한 것처럼 그들의 사회적 관계,배경,오몰로지를 통해서 살펴보자.

-통화주의 학파의 탄생과 성공. 그에 따른 변화.

 

통 화주의 학파의 산실로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시카고대학은 원래 Est에 의해 설립된 대학이다. 석유재벌 출신의 존 록펠러가 1891년 Est 특유의 사회기여 정신에 입각하여, 동부 외에도 명문대를 만들겠다는 의지 아래 설립했다. 그러나 학문의 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동부의 Ivyleague 대학들을 제치고 시카고 대학이 명문의 위치를 차지하기는 어려웠다. 우수한 학생이나 학자들이 훨씬 뛰어난 명문대학교들을 버리고 아무리 지원이 좋다 하더라도 이름없는 시카고대학으로 올 이유는 없던 것이다. 이에 시카고 대학이 선택한 전략은 바로 국제화 전략과 철저한 실력주의이다. 즉, 뛰어난 학문적 재능이 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경제적인 문제,가문의 문제-동부 명문대로 진학이 어려운 학생과 학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 시카고 대학 출신의 통화주의 학파와 적극적인 오몰로지를 맺는 산업,금융 등의 각 장의 열세에 위치한 기업들한테서도 드러난다. 이미 우위를 점한 Est 중심의 자본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가문 등을 최대한 배제한, 철저한 실력 위주의 인재를 영입하거나, 국제화 전략을 통해서 외국으로 진출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정체성 형성과 경쟁 세력과의 구분짓기를 위해 대세인 케인지언 대신 완전 새로운 학문인 계량경제학과 통화주의를 받아들이고 이들과의 오몰로지를 형성하게 된다.

 

시 카고대학의 이런 국제화,실력주의 전략 덕분에, 미국으로 들어온 한 경제학자가 갈 곳 없이 떠돌다가 시카고대학에 자리를 잡게 된다. 바로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이다. 하이에크는 철저한 시장교조주의자로서 공급자 중심의 경제와 완전한 시장체제의 실현, 그리고 계량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경제학자였는데 당시 경제학의 주류였던 케인지언은 위에 기술했다 시피 수요자 고려와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적절한 통제를 중시했고, 계량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즉, 하이에크의 존재는 경제학의 장에서 완벽하게 고립된 존재였으며, 이러한 위치가 시카고대학의 대학의 장 내에서의 위치와 맞아떨어지며 하이에크는 시카고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 러나 하이에크가 단순히 시카고대학에 공급자 중심과 계량적 방법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씨앗을 뿌려놨다면, 이를 본격적으로 키워낸 사람은 바로 콜스 커미션과 밀턴 프리드먼이었다. 콜즈라는 주식투자가가 주식예측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학자,물리학자,통계학자를 고용한 아마추어 연구집단이었던 콜스 커미션은 이후 이것을 독자적인 계량경제학으로 만들어 학문의 일대 혁신을 이룬다.

 

밀 턴 프리드먼의 경우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수재로서 당시로서는 비주류였던 계량경제학을 연구하여 간신히 박사를 따고 시카고 대학으로 이동한다. 이후 콜즈 커미션과의 시카고 대학 내 학문 투쟁을 통해서 그 존재감을 획득한다. 그러나 콜즈커미션은 계량경제학을 응용해 케인즈 주의를 혁신해보기 위한 케인지언들의 목표 아래 예일대학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결과, 계량경제학을 응용한 사뮤엘슨,토빈등의 케인지언들이 케네디 정부 당시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그 러나 정작 시카고 대학에 남은 밀턴 프리드먼과 그 후학들은 주목받지 못한다. 이런 흐름에 대한 이들의 분노는 두가지로 집중이 되는데, 계량경제학을 가지고 케인지언들을 정당화해준 콜즈커미션에 대한 분노와, 자신들의 실력을 정당하게 평가받는 것을 가로막는 Est들에 대한 것이다. 이후 시카고 대학에 고립된 통화주의 학파는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뚜렷해지고 가문과 애매한 에세이,통제,질서를 중시하는 케인지언에 대비하여 자신들은 능력을 갖추고 수학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며, 자유와 창조를 중시하는 학파라는 인식을 발전시키기 시작한다. 이러한 도식화된 인식 틀 내에서 이후 세계를 광풍으로 몰아넣은 공급자 중심의 시장경제학-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점차 교조적으로 발달한다.

 

그 렇다면 이렇게 고립되었던 이들이 어떻게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는가? 모든 반전은 위기에서 기인한다. 80년에 닥친 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전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통화주의학파를 비롯한 각 영역의 열세에 있던 세력들이 오몰로지를 형성하고 통화주의 학파의 이론을 무기로 삼아 케인지언에 대한 공격에 나선다. 이를테면 상대적으로 언론의 장에서 열세에 처해있던 금융자본 위주의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뉴스위크 등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사설을 주로 실어 타임계열,포스트계열과의 차별화를 꾀하거나, 금융에서 열세의 장에 위치한 Citibank,Bank of America, 산업에서 열세에 놓인 이민자,신흥 자본가 계열의 자본 등이 시카고대학의 통화주의를 받아들이고 동맹관계를 형성하여 각 장에서 우위를 점한 Est계열의 세력들과 구분짓기를 시도하며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특히 산업에서 신흥세력이었던 벡텔사의 경우 각 장의 열세 세력들을 규합하는 장을 운영하여 오몰로지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 기에 특이한 정치적 흐름에 70년대 말부터 형성되는데, 지미카터가 주창했던 인권외교로 인해 기존 우방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위상이 약해진 미국에 대해 “강력한 반공주의”를 요구하는 일련의 흐름이 일어나게 된다. 이에 공감하는 진 커크 패트릭 등의 험프리 민주당원들과 공화당원들의 협력,그리고 신보수주의 운동을 통해 로널드 레이건이라는 강력한 아이콘이 등장한다.

 

단 순히 그가 공화당 후보였다면 당시의 폭발적 지지를 얻기 어려웠겠지만, 레이건의 태생과 인생,사상 자체가 각 장에서 열세에 있던 세력들의 취향에 딱 부합하는 것이었다. 완벽한 자수성가 타입의 강력한 반공주의자 로널드 레이건이 아닌 동부 Est출신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러한 일련의 흐름과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세력의 강력한 오몰로지에 의해, 시카고대학 통화주의 학파는 드디어 레이건 행정부 내에서 레이거노믹스를 만들고 집행하는 주류 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 런 흐름은 단순히 미국 내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외국으로 진출해 있던 상대적으로 열세인 미국 자본들이나 제3세계 지역의 신흥 엘리트들과의 오몰로지를 통해서 국제적 흐름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신흥 엘리트들이 본국의 관료,엘리트 경제학자들을 공격하는데 있어 통화주의 학파의 계량경제학을 적극 활용한다. 거기다 이후 발생하는 각국 금융위기 이후 경제의 장에서 권력이 이들-Technopols라 칭하는-에게 완벽하게 넘어간다. 물론 이 과정에 있어서 미국이 사실상 틀어쥐고 있는 국제 경제기구인 WB와 IMF의 헤게모니 변화도 큰 역할을 했다.

 

국 제경제에 있어 케인지언의 사상을 관철하던 기구였던 WB와 IMF의 변화 과정을 본다면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미국을 넘어서 어떤 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 할 수 있다. WB의 경우 위에 기술했듯 2차 세계대전 이후 창설되어 국제 투기등을 억제하고 PL을 지원해주는 식으로 개발도상국에 특혜를 주는 식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1981년에 레이건 행정부 아래 Bank of America의 사장 A.Clausen이 WB의 장을 차지하고 수석경제학자로서 통화주의 학자 얀 크루거가 임명된다. 이를 통해 WB가 주던 개도국에 대한 특혜가 줄어들고 중점 사업이던 PL도 심사제도에서 경제구조조정 프로그램-conditionality-를 수행하는 조건 아래에서만 제공된다. IMF도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기준은 J.Williamson이 WB 수석경제학자 재임 당시 만든 워싱턴 컨센서스라 이름붙인남미 연구보고서인데, 이는 유연성,시장개방,탈규제,민영화 등의 통화주의 학파의 이상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이 갖춰졌다고 해서 바로 국제질서가 통화주의 학파의 이상대로 재편되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갖춰지는 데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것중 하나는 바로 “위기”였다.

 

80 년대 이후에 각 국에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시, WB와 IMF에 손을 벌리는 틈을 타 이 교조적 프로그램이 conditionality라는 이름을 빌어 각 국에 있던 technopols와의 동맹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실행된다. 문제는 이 위기가 한국의 IMF상황에서 봤다시피 자본의 자연스러운 붕괴 과정이 아닌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서 야기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즉, 위기를 발생시킨 다음 위기를 수습하는 댓가로서 신자유주의적 conditionality를 강요하는 식으로 국제적인 질서가 재편되게 된다.

이 런 동맹관계의 확장과 실행을 통하여 통화주의 학파는 세계경제의 표준이 된다. 이 과정은 위에 쭉 기술했듯이, 더 나은 대안으로서 선택된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누적진화의 단계가 아니다. 경제학의 장 내에서 열세이던 통화주의 학파가 장의 규칙과 자본을 점령하기 위해 다른 장의 비슷한 위치에 있는 세력들과 오몰로지를 형성하고 우위에 서있던 Est들과 투쟁, 종국에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자신들이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는 투쟁의 과정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가 단순히 학문의 문제였다면 우리 생활을 쥐고 흔드는 이런 권력은 생겨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경제학을 넘어서서 우리 생활을 구성하는 인식 틀 자체를 바꿔버린 데에는 위에 기술했듯 신자유주의 학파에 공감하고 동맹을 형성, 그들의 도그마를 실현시키는 다양한 장을 가로지르는 오몰로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렇다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집권한 통화주의 학파의 경제정책은 얼마나 성공했을까?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은 통화주의자들의 작은 정부와 시장주의 뿐 아니라 반공을 기치로 하며 강한 미국을 요구하는 신보수주의에도 한 축을 맡기고 있었다. 때문에 반공에 필요한 재정지출과 통화주의 학파가 요구하는 긴축재정 사이의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결 국 국방부문에서의 기하급수적인 재정지출을 유지하면서도 통화주의자들이 요구하는 작은 정부를 위해서 긴축을 행하게 되는데, 이 방향이 부유층에 대한 감세와 기업에 대한 탈규제로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공공보조를 없애는 방향으로 복지 예산을 포함한 각종 사회적 투자 예산들이 삭감되고, 부작용으로 R&D등의 기업혁신에 필요한 정부의 지원, 산업 인프라에 대한 투자, 교육에 대한 투자 등도 같이 축소된다.

 

또 한 공급자 중심의 도그마 아래 탈규제의 일환으로 금산분리 원칙을 철폐함에 따라 자본 순환의 싸이클이 짧은 금융자본이 자본 순환에 있어서 긴 인내를 필요로 하는 산업 자본을 합병한다. 이에 따라 산업에 대한 장기적 투자가 원천적으로 막히고 고용인력에 대한 구조조정 또한 수시로 발생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가치를 생산해내는 제조업이 쇠락하고 기생적 자본인 금융자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결 국 탈규제와 긴축재정의 결과로 복지가 후퇴하고 노동조건 불안정에 따라 비숙련 노동자가 증가, 미국의 탈 산업화가 촉진된다. 85년이 되면 미국의 대외무역적자가 사상최대치를 기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적자문제를 지적하며 작은 정부를 표방한 통화주의자들의 시대에 재정적자가 줄기는커녕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결국 케인지언 뿐 아니라 통화주의자 내에서도 자본을 규제할 수 있는, 혹은 좀 더 완벽한 시장경제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제도’의 존재를 강조하는 식으로 경제학 내에서의 또다른 전환이 일어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공고한 헤게모니는 신자유주의에 있다. 얼마전 존재했던 전세계적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위력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WB 가 스스로를 비판하고, 통화주의자들이 제도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고 해서 그것이 완벽한 시장질서 구축에 대한 포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하이에크가 이야기했던 자기파괴적인 정부가 스스로를 없애기 전에 구축하는 시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법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신 자유주의의 전도사들이 스스로를 반성하며 새로운 대안으로서 제시하는 시민사회,거버넌스 담론은 완벽하게 선출권력을 배제시키고 “참여”라는 멋진 단어를 통해 가장 강력한 세력인 자본을 협상 테이블에 인민의 대표로서 참가시킨다. 그 결과는 우간다에서의 물 민영화와 같이 처참할 정도의 공공성의 파괴이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명박 정부의 무능력을 질타하며 그들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등장하는 것은 공공권력의 제대로 된 선출이라기보다는 자본이나 NGO같은 민간 영역들이 정부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박권일은 이를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계몽된 시민의 모습으로 ‘국가권력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할 때,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이 은밀히 의지하고 있는 건 시장권력에 대한 확신이다.”라 고 표현한다. 새로운 신자유주의가 반성을 가장하며 노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모든 통제로부터의 완벽한 탈주를 계획하는 신자유주의의 이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계보의 추적들을 통해서 표피속에 숨겨져 있는 진짜 목표를 봐야만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 통제를 통한 민주주의의 확장.

 

무 엇보다도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원리를 삶의 모든 영역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인간 삶의 영역 전부를 시장으로서 바꿔놓는 것을 그 골자로 하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자본주의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지적한 부분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폴라니는 시장은 모든 것을 ‘팔리기 위한 상품’으로 재편해야만 구현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애시당초 상품이 되기 불가능한 노동,토지,화폐까지도 허구상품으로서 재구성하여 작동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애시당초 저 세가지 요소는 상품이 될수 없는 것을 상품화 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시장 외적인 영향력을 받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는 결국 필연적으로 붕괴한다. 1-2차대전 전후에 폴라니가 보았던 제국주의 시대보다 더 극적인 모습을 신자유주의 체제는 보여준다. 상품이 될 수 없는 것들을 상품화 시키고, 마냥 자유로울 수 없는 것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음으로서 결과적으로는 그 자신의 기반마저 파괴되는 자기파괴적 질서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것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 지난 전 세계적 금융위기와 각국의 불황들이다.

 

앞 에 기술했듯이 그 어느 때 보다 우리에겐 수많은 자유가 주어져 있다. 직업을 선택할 자유, 자신을 표현할 자유. 그러나 자유롭기 위해서 자본을 갖춰야 한다 라는 사실은 은페되고, 모든 것은 자신의 몫이자 책임으로 수렴한다. 완벽한 자기 능력주의, 자수성가에 대한 찬양,자기계발. 세상의 모든 역경을 모험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사회가 해체된 세상의 고립된 개인의 상이야 말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일 것이다. 그 결과 우리가 얻게 된 것은 완벽한 자유 만큼이나 완벽하게 해체된 공공성과 사회이다. 자유에 질식하는 시대의 한복판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시대의 역설을 부르디외는 “개인의 자유의 소망 아래 세워진 이 경제질서의 궁극적 토대는 사실상 실업,불안정 취업,해고,위협에 의한 공포 등의 구조적 폭력”이라 칭한다.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은 그것이 개개인의 불안정한 삶을 강요를 통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의지를 통해서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다. 즉, 저 문장에서의 방점은 구조적 폭력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의 소망 아래 세워진 질서’가 된다. 그 어떤 시대보다도 가장 적극적으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배체제에 복속시키는 시대가 바로 지금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도, 97년의 위기를 거치면서 IMF의 conditionality 아래 가장 앞선 형태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갖추고 있는 국가가 되었다.

 

그 렇다면 우리가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살고 있는 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구현해내는 사회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치가는 매우 중요한 고민의 지점일 것이다. 경제가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해버리는 자본주의의 시대에, 경제를 지배하는 특정 사상에 따라 민주주의 또한 다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물적 존재인 이상, 실제 인간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경제 체제에 따라 인간의 행복과 권리는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권력의 배분과 작동을 통하여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고, 인간을 보다 주체적으로 만들기 위한 제도거나 정신을 칭하는 것이라면 어떤 경제적 조건을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민 주주의란 선거,3권분립 등의 측정 가능한 제도를 갖추고 단순히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말로 완벽한 민주주의의 시대이다. 또한 87년 6월에 모든 새로운 사회들에 대한 꿈들은 종료되었어야 할 것이다. 철저한 자유와 합리적 개인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경제이념은 단순히 경제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틀로서 존재한다.

 

무 엇이든 내 힘으로만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 자신의 인생은 자신만이 책임져야 한다는 공포감은 나는 개성을 갖춘 자유로운 주체라는 욕구와 자본만 갖춘다면 완벽한 선택의 삶을 살수 있다는 욕구와 짝을 이룬다. 사람들의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었던 각종 사회제도의 해체에 따라 개개인의 삶은 불안정해지고 그 주기도 짧아졌다. 그러나 이런 불안감은 “자기계발” “능동적 개인” “욕구의 충족” “1인 CEO" 등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개인을 묘사하는 듯한 미사어구에 가려져 내가 ”능력만 있다면 벗어날 수 있는“ 일시적인 것처럼 보여진다. 사회적 대응이 완벽하게 제거된 이 상태에서 개개인에게 주어진 선택항은 사실 몇가지 되지 않는다. 애시당초 사회 자체가 해체되어 버렸는데 개인에게 각개약진 말고 남은 선택항은 거의 없다. 개개인의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납치되어 완벽하게 왜곡되어 존재한다. 이것을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 이 체제 하에서의 민주주의를 판단하는 가장 강한 준거틀은 ”경제의 장에서의 자유로움“이다.

 

하 지만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을 단순히 측정 가능한 제도의 합. 혹은 개인 자유의 실현이라는 측면을 넘어서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상이며 개인자유를 넘어선 사회적 자유의 실현이라고 바라본다면 어떨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전통과,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평등한 환경, 그리고 사회라는 공동의 시스템을 통한 부조리의 해결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본다면 지금 이 시대는 가장 민주주의적이지 못한 시대일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 조건들 조차 시장의 자율성이라는 원리에 내던져진 이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경제적 현실에 대한 몰입과 압박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가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로 인하여 생명력을 가지게 하는 제도라면, 신자유주의야 말로 가장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존재일 것이다.

 

물 론 신자유주의가 표방하는 시장질서의 완벽한 실현을 그 자체만으로 악랄한 존재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란 다양한 장들이 어우러지며 이루어지는 곳이며 그 모든 장들에 요구되는 규칙과 질서는 다 다르다. 자유라는 시장의 질서가 요구되는 장이 있다면 시장과는 다른 통제와 공동체의 규칙이 요구되는 장들이 존재한다.

 

신 자유주의 체제가 인위적인 의지와 노력을 통해 자리잡고,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파악해야 할 것은 지금의 체제가 인위적인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진보적인 표피 속에 숨겨진 진짜 목적들만은 아닐 것이다. 자유라는 너무나 고결해보이는 원칙일지라도 이것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리처럼 활용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무의식중에 배워왔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자유를 확장함으로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간의 자유를 포기함으로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혹은 확장하기 위해 우리가 바라봐야 할 지점은 완벽하게 해체되가고 있는 사회의 재복원, 혹은 평등과 보장의 개념을 포함하는 훨씬 적극적인 민주주의와 자유의 개념일 것이다. 자유에의 맹목을 벗어나 인간은 마냥 자유로울수 있는 존재이기보다는, 선출된 공공권력을 통한 합리적 통제 또한 함께 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난 세기 겪었던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도피와 그에 따른 광기와 무기력을 다시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이제 “어떤 지점을 통제할 것인가?”이며 제대로 된 통제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