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0308] 나 자신의 윤리

leedong 2014. 3. 9. 01:44



  얼마전 퍼온 '윤리가 없는 이의 착함은 부정부패의 연료일뿐' 이라는 글을 보며 내 일에 대해 생각했다. 결국 이건 내 얘기이기도 하구나-라며 쓰린 속을 부여잡았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그저 '선한' 태도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던가.


  여기서 윤리적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흔히 쓰는 용법으로서의 윤리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호/불호를 나눌 수 있는 판단력. 그리하여 형성된 사고를 바탕으로 외적 동기가 아닌 내적기준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취하는 태도를 아우르는 의미일 것이다.

  때문에 착한 사람이 되기는 쉬워도 윤리적인 사람은 되기 어렵다. 반대로 악인도 윤리적일 수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나 '다크나이트'의 조커 또한 이런 의미에서 가장 윤리적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내 삶으로 눈을 돌려보자. 직장생활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너무 착하게 구느라 결국 피해를 만든다' 라는 지적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쓸데없이 예스맨으로 군 것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루어졌던 일은 아니었다. 순간의 미안함. 순간의 혼란 등으로 사람좋게 굴다가 결국 일을 정상적으로 치루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건 결국 용기없음의 다른 말이다. 웃고 있었어도 정작 내 자신의 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윤리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내적 기준의 준수를 위해 남에게 상처주는 것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꼭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기 위한 첫 걸음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들로 미루어 판단할 때. 남의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행위자가 나인 이상 조금 더 나 자신의 기준,윤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저 글을 보며 되새겼다. 미안하니까. 지시한대로가 아닌 나 자신의 내적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이가 되어야 한다. 비단 노동만이 아니라 남에게 상처주는 것을 각오하는 태도를 가져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지. 올해의 나는 보다 남에게 상처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나 자신의 윤리로서 일을 하자. 어쩌면 이 시기는 내가 툭하면 탓을 하는 '반항해본적 없는 중고딩의 삶'을 만회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