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소셜 네트워크
1. 요즘 세상은 social이 대세다. 사회적 자본, 사회적 기업, 거기에 SNS-Social Network Service까지. 사회가 자꾸만 부각되는 이런 상황은 사회의 가치가 그만큼 우리 생활에 있어서 중요해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여러 가지 변화로 사회라는 것이 해체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시각이 더 적확할 것이다. 문화평론가 출신의 계원예대 서동진 교수가 강연에서 한 이야기를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더 이상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극한의 자유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사회는 철저히 해체되었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개개인의 자유로운 연합인, 유희의“Social network"뿐이다. 사회가 해체된 이상 모든 리스크는 개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2. 더 이상 사람들이 서로에게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쉽게 관계를 맺고 끊는, 그래서 어떤 실체를 가진 구조적 공동체라기보다는 사구와도 같이 시시때때로 뭉쳤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이제는 사회라는 이름을 차지한다. 사회라는 것이 개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구조를 지칭하고 서로에 대한 끈끈한 연대감으로 형성되는 것을 이야기한다면 정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사회라 부르는 것은 지독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 안에서 일시적인 집단을 형성시켜주는 것은 단순한 취향이거나 혹은 일시적인 쟁점들, 혹은 이익들에 연관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3.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다루는 마크 주크버크의 지난한 소송 두 개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소셜네트워크라는 단어 속 사회라는 위치의 아이러니를 반영하는 듯하다. 단순히 미국 성공 드라마-매력적이고 노력하는 주인공과 행복한 엔딩-이라고 여겨지기 쉬운 이 최연소 억만장자의 이야기는 극 내내 답답함과 쓸쓸함만을 불러일으킨다. 소셜의 열풍을 불러 온 천재 개발자의 모습은 전혀 “사회적이지” 않다. 계약서의 문제 때문에 가장 절친한 사람과 등을 돌리고, 자신의 천재성으로 인한 외골수적 기질이 오히려 스스로를 고치 안에 가두는 모습. 영화는 여기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표적 드라마-성공미담,인간극장-를 뒤집는다. 부러워야 할 자가 부럽지 않다는 이 미묘한 기분. 성공담의 전형적 인물은 이 영화 속에 존재하지 않고,‘하버드 젠틀맨 타령 그만하고 얼굴을 한 대 쳐버렸으면 좋겠다’는 감상만 남기는 한 Nerd만이 존재한다. 사회없는 개인은 얼마나 공허한가?
4. 사회를 창조해놓고도 전혀 사회적이지 않은 마크 주크버크의 모습은 실존인물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 다기 보다는 그 쓸쓸한 분위기 자체가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치환되어 돌아오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주크버크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에 소셜 네트워크 속에 소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역으로 사회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가 facebook을 만들 생각을 했고, 그것에 우리가 빠진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SNS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얼마나 사회적인가? 많은 말을 쏟아내고-마치 극중의 마크처럼-많은 숫자의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결정적 순간에 돌아서지 않고 나와 정말 관계를, 그리고 사회를 형성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얼마나 되는가? 그런 관계가 이제 우리에게 가능한 것일까? 사업이 확정될수록, 혹은 follower와 친구를 늘릴수록 사회의 해체는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고 우리는 쓸쓸해진다.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사회의 형성 조건에 있어 “공통감각”을 가장 중요하다 언급했었지만 그런 공통감각 따위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소셜 네트워크라는 영화는 한 성공적 인물에 대한 드라마라기보다는 반 소셜네트워크의 분위기를 가득 품고 있는 영화라고 해석해도 될 것이다. 우리에게 정말 “사회적”이기 위한 공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5억 명의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약간의 적은 어쩔 수 없다는 카피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5억 명 조차 “친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social은 더더욱 아니다. 이름 자체가 지독한 역설을 품고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