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0422] 16번 채널에 대하여

leedong 2014. 6. 3. 11:49

[인터뷰] 세월호 전 항해사 "16번 채널 쓰면 문제 커져 사용 안 해"

"[앵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알기로는 채널16을 모두 공용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야말로 16을 쓰고 있어야 한다고 저희가 이미 전해 드린 바가 있는데 16을 쓰면 회사 측이 뭐가 곤란한 점이 있습니까?
[김모 씨/세월호 전 항해사 : 그게 왜 곤란하냐면 그렇게 되면 모든 해양수산부라든가 모든 게 다 밝혀지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선장도 아무 이상 없이 가더라도 선장도 가시게 되고 직원도 가게 되
고 골치 아픈 일이 많습니다.]
[앵커]
그 말씀은 16번 즉, 모든 사람들이 듣는 16번을 쓸 때 누가 예를 들어서 선장이든 어느 쪽이든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때문에 16번을 쓰지 않는다라는 얘기인가요?
[김모 씨/세월호 전 항해사 : 네, 그렇죠.]"



 이 기사를 보고 화가 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에서 눈에 딱 밟히는 구절이 있었다. '문제가 일어날 것이 걱정되어'라는 말이 그것이다. 나는 이게 꼭 선박업의 문제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조직생활을 하는 이들은 경중은 다르더라도 다들 비슷한 딜레마를 겪어 봤을 것이다. 윗사람 귀찮게 하면 일이 피곤해지니까. 그게 괜히 피해주는 일 같으니까. 어차피 무사히 넘어갈 거 같은데 괜히 정석대로 하면 나중에 나까지 피곤해질거니까. 해서 넘어가고 돌아갔던 일들이 한두개가 아니다. 세월호도 자신들이 무사히 사고를 넘기고 그냥 윗사람까지 안 가게 잘 수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윗사람의 눈치를 안보는 강한 멘탈을 가지면 그만이겠으나, 소시민이 용기를 가져야만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소시민에게 그런 것들을 강요하기란 어렵다. 도덕적 인간이 되는 것은 의지와 도덕이라기 보다는 물리적 환경의 문제에 가깝다. 세상 그 누가 자신에게 문제가 다가오고 있을 때 그것을 깨닫는 혜안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습관화된 행동만이 재앙의 습격을 방지할 수 있다.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선장이 어쩔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일반 사무직과는 달리 선박의 운영이란 잘은 몰라도 항상 많은 이들의 목숨을 건 일이고, 어찌되었건 많은 제약상황과 준수상황들이 발생하는 일일 것이다. 일의 긴장도가 훨씬 높다는 얘기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16번 채널을 사용하지 않는 태도라는게 꼭 대형 선박의 침몰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적 태도로 자리잡아 있다는 이야기다. 16번 채널을 제때 사용하는 이들이 대체 얼마나 있는가? 난 본적이 없다.

  나에겐 저 이야기가 도무지 남 얘기 같지가 않다. 문제가 커질까봐, 귀찮으니까, 윗사람 신경 안쓰게 할려고 일 자체가 뭉개지고 날아가는 것을 볼때마다 우리는 이제 16번 채널과 세월호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이 든다고 해서, 우리를 둘러싼 이 상황들이 나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자꾸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