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공연

[0608] 천주정

leedong 2014. 6. 9. 10:08




 작년 말, 중국의 유명 작가 모옌의 <술의 나라>를 읽으면서 중국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중국사는 알아도 중국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알고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내가 중국과 중국예술을 알면 뭐 얼마나 알겠냐..라며 내가 본 중국의 영화,소설들을 따지고 보니 정말 몇개 되지 않는다.

  소위 세계로 진출하여 보편성을 획득했다고 일컬어지는 감독들의 작품은 엄밀히 말해 중국발(發)인 것이지 그것이 현재 중국의 모습이나 심리를 알게 해주는 것이라 할 순 없을 게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 날 본 홍콩영화가 중국의 이야기라 하면 철 지난 이야기이고, 그나마 아는 루쉰을 들고 나온다면 그것이 어떤 근간이 될 지언정 현실에 대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들을게 뻔하다.

  이처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중국은 아직도 나에게 멀고 어려운 이야기다. 지리적 근접성에 비해서 이해도가 낮다는 점에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으로 우리 대다수는 유럽이나 일본에 대한 이해보다도 더 중국을 알지 못한다.(미국문화야 뭐 사실상 한국 문화라는 것이 미국의 열화 버젼이니 그렇다 쳐도) 중국에 대한 궁금증에 찾아봤던 게 위에 언급한 모옌의 작품이었지만 '아 이 동네 당 간부와 신흥 부르주아 행패가 심하긴 심한가보구나..'하는 피상적인 인식만 받은 채, 난해한 구성과 문체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나처럼 중국에 대한 궁금증은 조금씩 가지고 있으되, 무엇을 봐야 할지 애매한 이들에게 <천주정>이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간단한 영화 설명을 하자면 <천주정>은 중국 내에서 일어난 4가지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옴니버스 영화이다. 그 사건들은 2000년대 초 일어난 광산 대량 살인 사건, 2012년 일어난 은행 강도 사건, 2009년에 일어난 공무원 살인 사건, 그리고 폭스콘 공장의 연쇄 투신 자살로써, 국제적으로 문제가 된 폭스콘 관련 사건을 제외하면 모두 다 중국 내에서 중국인들에게 많은 충격을 가져다 준 사건들이라고 한다. 감독은 이 이야기들을 극적으로 각색하기 보다는 사건의 돌발적인 충격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치솟거나, 쉽게 몰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기도 하다.

  극 중 내내 경극이 몇 장면 등장하여 유래를 찾아보니 우리가 중국영화에서 흔히 보는 패왕별희 내지는 서유기가 아닌 수호지에 관한 경극이라고 한다. 모두가 알듯이 수호지는 108호걸들이 탐관오리와 국가의 횡포에 대해 국가에 맞먹는 폭력을 동원하여 대의명분을 찾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수호지의 경극은 클라이막스로 흐르고 있는데, 자신이 처한 부당함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했던 이들은 같이 모일 이도 없고 같이 갈 곳도 없는 풍경이 영화 내내 펼쳐지다가 흩어지는 모습이 답답하다. 공용 광산으로 챙긴 부당이득을 돌려주기는 커녕 고소하겠다는 이를 삽으로 패는 사장에게, 돈이면 다 되는데 왜 너는 몸을 팔지 않느냐는 공무원에게, 조용히 소박히 일해서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은데 그걸 허용해주지 않는 공장에 대해 주인공들이 보이는 태도는 집단적이거나, 계획적이거나, 정의롭기 보다는 돌발적이고, 히스테릭한 폭력행사로 나타난다. 같이 할 이도, 나갈 곳도 없는 것이다. 

  G2로서의 중국, 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으로서의 중국, 초 강대국으로서의 중국은 사실 이렇게 사람을 지옥으로 내모는 아사리판이라는 고발이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배경음악 하나 없이 연달아 이어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머릿속이 고비사막 마냥 빠짝 말라 비틀어지는 느낌이다. 그 느낌은 사실 <천주정>의 에피소드들이 지금 내가 사는 이 곳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공포감과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묘사야 이미 익숙한 전 세계적인 상황이니 그렇다 쳐도, 피해자들이 보여주는 히스테릭하고 즉흥적인 반응들이 공포영화 못지 않다. 각개전투로 따지면 조선반도도 못지 않은 곳인데 말이다.

  이런 사회 고발 영화들이 다 그렇듯. 영화를 대하는 외부의 태도를 보면 진실의 농도가 드러난다. 중국 당국이 이 영화를 상영금지 처분했다는 뉴스에서 이 영화의 현실성을 알만하다. 위에 말한 특징들 덕에 순간순간 촌스럽거나 삐걱거린다는 인상을 쉽게 떨칠 수 없지만, 영화에 담긴 절박함이 촌스러움을 능가하고도 남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