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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최철원의 파이트머니와 자동차공장

leedong 2012. 4. 29. 15:08

-매품을 팔던 흥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흥부전"에 기가 막힌 구절이 나온다. 거의 파산 직전 상태에서 가족만 늘어나는 흥부는 부양을 위해서 여러가지 알바(?)를 하게 되는 데 그 중 곤장을 대신 맞아주는 알바가 있었던 것. 흥부전에서는 이를 매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환곡을 얻지 말고 대신 매를 맞으시오. 이 고을 김 부자를 어느 놈이 영문營門 무고하여 잡아올리라는 공문이 왔으나, 김 부자는 공교롭게 병이 나고 친척도 병이 있어 대신 누구를 보내고자 하여 나를 보고 의논을 하는데, 연 생원이 김 부자를 대신하여 영문에 가서 매를 맞으면 그 삯으로 돈 30냥을 줄 터이오. 그 돈 30냥은 예서 환 내줄 터이니 영문에 들어가 대신 매를 맞고 오는 것이 연 생원 마음에 어떠하시오?"

흥부는 돈 많이 준다는 말이 반가운지라, 미처 매 맞기에 어려운 생각은 못 하고,
"매는 몇 대나 되겠소?"
"한 30대 될 터이지."
흥부가 하는 말이,
"매 30대만 맞으면 돈 30냥을 다 나를 주나?"
"아무렴, 그렇고말고! 매 한 대에 한 냥씩이지."
이 말에 구미가 당긴 흥부가,
"여보, 이런 내지 마오. 우리 마을 꾀쇠아비가 알면 발등을 눌러 딛고 먼저 터이니 소문내지 마시오."

 

 온 가족이 굶어 죽기 직전인 흥부는 옆집에서 알면 그나마도 새치기 당할까 두려워 알리지 말라 사정하고 맞아야 산다-라며 하소연 까지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살인죄 외에는 다 방면하라는 영이 떨어져서 흥부의 아르바이트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간다.

-야만 1. 최철원과 유씨

 이 기가 막힌 상황은 아마 조선시대의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민중 생활을 반영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근데 몇백년 후. 흥부전의 매품 이야기만큼이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대신 거기서 해학과 풍자는 싹 사라진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지난 11월 28일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방송된 M&M 최철원 전 대표(SK 최태원 회장의 사촌)가 회사 소속 노동자를 알루미늄 방망이로 구타한 뒤 매값이라며 2천만원을 건넨 사건이다. 몇 년전 있었던 술집에서 폭행당한 아들의 복수를 대신해 주겠다며 청계산으로 끌고 가서 상대의 늑골을 부러뜨린 한화 김승연 회장의 폭행 사건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 건 참 멍청한 짓이다. 아무리 돈 있고 뺵이 있어도 그렇지 이정도면 21세기를 완전히 무시하는 그야말로 순수한 야만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탄압을 할려면 삼성처럼 핸드폰에 도청장치를 붙이거나 미행을 붙이고 두산처럼 학생한테 몇 천만원 씩 소송을 걸고 사찰 정도 해 줘야 세련된 21세기의 자본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사람들도 아주 좋다고 "또 하나의 가족"에 얼씨구나 속아줄 것이고 말이다. 딱히 사회주의자나 반자본정서가 강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최철원의 폭행은 참으로 눈뜨고 못 봐줄 지경의 수준 이하의 코메디이다.

 

(유씨의 피해상태 출처:시사매거진 2580)

 

 근 데 그 노동자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그냥 단순한 피해자? 유씨는 M&M의 부당고용에 맞서 시위를 벌여온 분이다. 민주노총 운수노조 소속인 화물연대 조합원이었던 그가 다니던 회사가 얼마전 M&M에 합병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운수노동자들에게 노조 탈퇴와 미가입을 강요했고, 가입 시 문자나 구두로 해고 할 수 있다는 계약서를 강제한다. 유씨를 제외한 다른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화물연대를 탈퇴하고 계약서에 동의했지만 유씨는 끝까지 버티며 SK 본사 앞에서 1인 차량시위를 벌여왔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18일 회사측은 유씨가 모는 탱크로리 차량을 인수하겠다고 했고, 생활고 때문에 결국 차를 팔러 갔던 유씨는 위에 기술했듯이 최철원으로부터 야만적인 폭행을 당하게 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회사는 당시 탱크로리 값 5천만원과 '매값' 2천만원을 주고서는  이후에 1인시위로 회사명예를 실추시켰다며 7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문 제의 불씨가 된 화물연대는 물류를 책임지는 화물운송노동자들이 2002년에 만든 노동조합이다. 90%이상이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고용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로 취급되어 노동권을 인정 못받고 있다. 결성 당시 화물연대의 요구사항은 간단했다. 노동 3권 보장과 운수사업법 개정. 이후 2003년 총파업을 통해 정부와 합의를 맺었고 2006년 3월 총파업에서는 삼성의 운수노동자 착취에 대하여 알렸다. 그리고 끝없는 투쟁의 결과로 2006년 물류총파업을 통해 드디어 부당한 상황을 개선하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상정한다. 그러나 정부와 운송업체,화주들은 여전히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고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 최철원 사건도 결국 이러한 지난한 화물연대의 권리찾기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야만 2.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파업

 최 철원 사건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비정규직들이 공장 점거를 하고 정규직 고용을 요구하며 20일째 파업을 진행중이다. 농성자 500여명은 4년에서 10년동안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은 두배 이상 차이가 났고 정규직의 잔업은 비정규직한테 돌아갔다. 기쁘게도 지난 7월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 업체는 불법파견업체이며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판결을 냈다. 이에 탄력 받고 현대차의 비정규직들은 가열찬 노조 활동을 했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측의 감시와 지속적인 폭력 뿐이었다. 현대차의 매출은 7년동안 24조에서 31조원으로 늘었지만 정규직은 유지되고 비정규직은 증가했다. 지난 11월 15일 분노가 터지고 눈물이 흐르듯 그렇게 갑자기 현대차 비정규지회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20일 넘는 파업을 예상 못했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쳤고 병들었으며 11월 20일에는 결국 한명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몸에 불을 질렀다. 한국은 여전히 수많은 전태일의 사회다.

(11월 20일 분신한 황아무개씨.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그리고 오늘, 12월 4일 현대차는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본격적인 공장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H빔을 이어서 붙인 30미터 짜리 철제 빔을 포크레인에 달아 이를 가지고 공장을 파괴한 것이다.

(공장 분쇄 중인 현대차 출처 : 합동취재팀-미디어충청/울산노동뉴스/참세상)

 
  거기다 공 장 점거 농성 기간 내내 의약품 지원 등이 차단되었고 점거 초반에는 무려 화장실 사용까지 차단되었다.  대부분이 감기에 걸려있지만 사측은 여전히 난방,온수,침낭의 반입을 막고 있다. 파업의 장기화를 막기 위함이다. 점거 진행 과정에서는 사측의 용역에 의한 폭력이 일어났다. 현대자동차 김태윤 비정규지회 조합원은 진압과정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한 후 기절까지 했다고 한다. 정당이나 시민단체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 컨테이너가 쌓여졌고 사람들은 이를 몽박산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현대자동차와 정부는 토끼몰이 하듯 다루고 있다.

-야만 3.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

 이 런 모습들이 낯설은 풍경은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생긴 뒤에 이런 모습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꾸준히 있던 모습이었다. 쌍용차 조합원들을 무차별하게 진압하던 전경들의 모습은 최철원의 야구방망이로, 그리고 현대차 공장의 H빔으로 겹치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반복될 거라는 절망을 가져다 준다. 현대차의 손실액이 몇천억원이라고 한다. M&M은 7천만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근데 1인시위자와 점거자들은 아무런 시설도 파괴하지 않았다. 비폭력으로 일관하는 그들은 그저 멈췄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몇천억원은 결국 그들의 피땀으로 이룬 돈이라는 말이 아닐까. 비정규직의 정규직 고용은 이미 합법임이 판결났다. 화물연대의 요구사항도 합의가 된 것이다. 정말 법을 어기는 자들은 누구일까?

 사 람들은 최철원의 적나라한 폭행에 대해서는 측은지심과 분노를 함께 불사른다. 사람이 사람을 저렇게 때릴 수가 있냐-라는 분노와 2천만원을 던져주는 최철원의 그 오만방자함은 사람들의 공분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현대차 공장을 꿰뚫는 H빔과 정몽구의 오만방자함은 왜 모두의 공분을 사지 못할까?

 진압 과정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폭행과 관리자들의 폭언 들은 왜 최철원의 야구 빠따만큼의 분노를 우리에게 주지 못하는 것일까. 현대차의 폭력과 국가의 폭력은 최철원 1인의 폭력보다 훨씬 강력하고 광범위하다.

(누구는 피해자일 뿐이고 누구는 맞아도 되는 자 인가? –좌측은 최철원 사건의 피해자 유씨 우측은 농성과정에서 폭행당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조원. 우측 출처: 합동취재팀-미디어충청/울산노동뉴스/참세상)

 

 노 동자 한 개인이 내던져져서 무차별적인 폭력에 희생당해야만 우리는 그 사람을 주목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몸에 스스로 불을 사르는 노동자에게는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다. 이 일련의 부조화 속에 노동자가 찾으려 했던 권리와 노동자가 꿈꾸는 정당한 세상은 사라지고 창백한 피해자와 처벌해야 할 오만방자한 재벌2세만이 남는다. 용산도 쌍용차도 모두 마찬가지었다. 그들은 불쌍하게 여겨지거나 혹은 반동분자가 된다. 권리를 찾으려 투쟁하다가 진압을 당해서는 아무도 불쌍하게 봐주지 않는다.테러리스트라던가 불법파업자라는 딱지만이 붙을 뿐이다. 그냥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시도하지 않는 창백한 피해자, "시민"이 될 때만이 세상은 노동자에게 주목한다. 이 야만은 현대차나 최철원만큼 적나라 하진 않지만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스스럼 없이 행해진다. "야만"인지조차 인지되지 않는 "야만"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최 철원은 구속되고 처벌받아야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화물연대의 투쟁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최철원과 현대차 노조를 같이 욕할 것이다.현대차 노조원들과 쌍용차 노조원들도 유씨만큼 심하게 맞았는데 세상은 그들 보고 "맞을 만하다"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뭐에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 사건들도 시간이 흘러 기록이 남으면 흥부전의 매품처럼 풍자물로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의 후손들은 몇백년 후쯤 이 시대는 참 기가 막혔구나-하고 웃을수 있을까? 우리는 분노하는 만큼이나 그들이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을 표백된 피해자가 아닌 "주체"로서 바라봐야만 한다. 유씨가 무엇 때문에 파업했는지를 봐야 한다. 그리고 최철원에 대해서 분노한다면 현대차에 대해서도 분노할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때서야 우리는 이 야만을 벗어날 단초를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