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04/25] 멍청하다고 말하기는 쉽지요

leedong 2012. 4. 29. 15:23

http://m.khan.co.kr/view.html?category&med_id=khan&artid=201204232131245&code=990304


"국회의원 선거보다 몇 배 중요한 또 다른 선거를 앞둔 지금, 우리 정치의 키워드는 민주당의 무능도 새누리당의 꽃단장 제스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눈앞에 꿈틀대고 있음에도 모두가 외면하는 그 괴물의 정체는, 바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선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우중화(愚衆化)인 것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강산을 뿌리부터 파헤치는 4대강 사업도, 헌법민주주의의 기초를 부수는 민간인 불법사찰도 모두 남의 일이라 여기는 극단적 개인주의. 민혁당 관련자 사법살인으로 상징되는 유신독재의 공포를 못 사는 이들도 살 만했던 호시절로 대체하는 기억상실증. 이 ‘숨은 손’들이 모여 허황무비한 7·4·7공약에 박수를 쳤고, 돈 놓고 돈 먹기식의 뉴타운공약에 몰표를 던졌던 것 아닌가. 그리고 이 손들이 8개월 뒤에 다시 붓뚜껑을 들 것 아닌가."



1. 총선 후 결과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도덕"에 호소하고 있는 글들이다. 그 중에서도 박근혜의 선거전략이 "괴벨스식"이라고 비판하거나 위에 링크한 대중이 우경화 우민화 되었다는 비판 들이 요 근래 봤던 분석 글 중 가장 힘없는 글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이러한 글들은 몇가지 현실을 간과한다. 소위 개혁진영에서 말하는 도덕의 문제(사찰,4대강 등)를 그리 중요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것과 그러한 선악기준이 지극히 협소한 리그 내에서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한 당을 지지할때 다양한 이유가 있다는 것...등등. 이런 부분들을 간과한 채 자신들의 패배의 원인을 하나의 근본적 이유로 만들고 싶은 이들이 빠지는 가장 쉬운 결론은 아마 "우민화"일 것이다.

3.물론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이들 중에서는 대책없는 박정희 향수에 빠져있는 종교적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적 맹신자는 좌파에도, 개혁진영에도 존재한다. 실질적으로 노동의 질이 개선된 적 없는 노무현 시기를 "살기 좋았던 시절"이라고 믿는 자들과 사회주의만이 답이라 믿는 자들이 진보-개혁진영에 어느정도 포진하는 마당에, 왜 새누리당 지지자들만 종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져야 하는가? 물론 양 측 모두 그런 광신자만큼이나 자신의 처지와 현실에 따라 나름의 선택을 하여 민주당을 뽑거나 새누리당을 뽑은 자들이 있다.
  내 이야기의 요지는, 한 정당에 대한 지지층은 그렇게 균일하지가 않다는 것이며, 그렇기에 그 정당에 대한 지지를 무조건 종교적이거나, 합리적이라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지지의 이유는 다양하다. 물론, 정치를 끝까지 밀고나가면 종교적 믿음의 세계에서 충돌하겠지만 사실 선거에서 당락을 가르는 중도층은 그 정도의 종교성까지 나아가지도 않는다.

4.혹은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여기는 경우는 어떠한가? 아마도 이런 주장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정치적 지형을 그들이 보지 못하거나, 자신의 신념과 궤를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을 '우민'이라고 지칭하는 태도에서 나올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러한 정치적 판단력을 삶에 가장 중요한 지식이라고 여기는 데서 나오는 발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정말 가장 중요한 지식인가?

정치적 행위들이 그다지 실제 삶에 변화를 주지 못하는 '잉여스러운 행동'으로 자리잡은 이 세계에서 그런 비판이 어떤 설득력을 가지는가? 아니 그 이전에 그 비판이 어디까지 정확한가? 그 도덕의 세계를 벗어나면 "너희는 멍청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을 의미있게 만드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을 고민할 일이다. 그들의 말대로 사람들은 '정치적 판단'의 측면에서는 멍청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판단이라는 것이 여유가 있고, 그 여유를 잘 활용하여 생긴 것임을 되새겨 본다면 그러한 비난이 "부자가 가난뱅이보고 열심히 안산다며 공격하는"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수 있을 것이다.

5. 송준모씨가 분석한 그대로, 야권이 내세운 것은 구체적이지도 않았으며 차별화 되지도 않았던 반면. '개별 지역의 새누리당 후보가 제시하는 지역이권의 확보는 구체적' 이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공약에 표를 던지는 이들이야말로 진보-개혁 세력이 원하는 "똑똑한 유권자"아니었던가?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민주당을 뽑은 이들이 훨씬 안이하며, 도덕성이라는 지극히 추상적 가치에 맹목적인 표를 요구하는 개혁진영이 이권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새누리당보다 훨씬 더 파시즘 적이다.

예를 들자면 새누리당의 지역구라고 하면 우리는 "무책임한 의원이 버티고 있는 보수적인 지역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지역에서는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당의 의원이 구체적인 민원들을 해결해주는 경우가 꽤 있다.(파업을 돕는 정도는 아니지만 임금체불을 해결해준다던가, 자잘한 민원들을 해결한다던가.) 이러한 실질적 이득과 효과를 버리고 "도덕적"판단을 하게 할 만큼의 어떤 매력을 야권이 만들어냈던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도덕적이지 않다고 비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사람들이 도덕만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파시즘과 우민화의 징후라면 인류 역사 상 파시즘의 위험이 없던 시절은 없다.

6.물론 저 높은 세계(혹은 서울)에서 볼 때 진보개혁세력의 가치가 옳을지는 모르겠지만, 옳다고 해서 현실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며 선거는 선-악을 뽑는 영역이 아니다. 이 결과에 대해서 우리의 선이 뽑히지 않았다고 모든 결과를 '우민화'나 괴벨스에 놀아난 것으로 부정하는 것은 징징거리기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7.마지막으로 이것은 좀 다른 이야기지만, 총선 이후 유난히 죽을 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정치가 우리 인생의 전부인가? 그리고 정작 그 '정치'에 모든 것을 건 자들은 살림이 거덜난 판국에도 다음을 기약하며 할 일들을 묵묵히 하고 산다. 적은 판돈을 건 사람들이 살림을 잃은 것처럼 말할 자유를 존중한다 그리고 어쨌건 그들의 좌절 또한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내가 '엄살이다'라고 말할 자유 또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