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소금꽃나무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이 책을 읽기 전에,그리고 한진중공업 파업 이전에 알았던 사람에게는 이 책은 일종의 부채의식이 아닐까?. 특히 이 책이 나온지 꽤 됨에도 치일 피일 미루다가 저가의 특별판이 나오고나서야 읽어볼 결심을 했다는 것은 희망버스 한번을 '안타고' 그저 트위터나 쪼물락 거리며 안타까워 하며 변명을 늘어놓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조적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자체가 이미 '쁘띠적'이고 자신의 정치성을 자랑하려는 과시욕의 일환일 것이다. 소금꽃나무를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극도의 죄책감이나 쁘띠스러운 연민보다는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소금꽃나무가 소금꽃나무에게 연대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는 동기이다. 그리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당당함에 대한 인식(단, 낭만적이지는 않은. 파업은 지독히도 많은 후유증을 남긴다고 한다.)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비참하게 여겨 "난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자조하기 시작하거나, 투쟁하는 사람들에 대해 연민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소금꽃나무가 일으킬 수 있는 가장 극도의 해악임에 틀림없다. 그럴 거라면 인간극장만 봐도 된다.
김진숙씨의 글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가슴 어딘가를 쥐어짜지만 그것은 교회 목사의 설교처럼 우리를 구렁으로 몰아넣고 죄의식에 몰아넣는 소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김진숙씨의 말들은 변영주 감독이 전태일에 대해서 평했던 것처럼 "내가 살면서 조금씩 이기적이려고 할 때, 내가 그냥 쉽게 눈감아버리고 싶을 때 '너 그렇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겠니' 라고 말하는 어떤 심장의 소리 같은.." 것이다. 그 소리에 반응하는 모든 방식이 현장의 투쟁일 수는-그렇다면 좋겠지만- 없을 것이다. 후원을 할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알릴수도 있고, 다양한 방식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알면서도(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애써 보지 않으려고 했던 이야기들이 아직 우리를 울리거나 분노하게 할 수 있음을 깨닫는 일은 중요하다. 그 어떤 사회주의 이론보다도 김진숙의 글은 우리에게 행동을 요구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어쩌면, 어느날.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에 내려가 있을 수도 있고, 언젠가 희망버스가 더이상 필요없는 날들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낭만이다. 그러나 이정도 낭만은 가져볼만 하지 않을까?
우리를 사람답게 해주는 최소한의 소리. 우리 스스로를 잡아먹지 않고 긍정으로써 연대할 수 잇는 최소한의 시작점을 찾는것이 소금꽃나무의 가장 바른 독해가 아닐까. 나는 이 책이 더 많이 팔리고, 많이 읽혔으면.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금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사소한 연대의 제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