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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닥치고 정치

leedong 2012. 4. 3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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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왜 이모양인가?에 대한 진단과 거기에 따르는 행동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진단과 행동을 패키지로 묶어서 <정치>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근데 정치라는 것이 이처럼 진단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면 적어도 행동의 시발점이 되는 진단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이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김어준의 정치에는 진단에 요구되는 이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며칠전 트위터에서 나를 경악하게 했던 말이 있는데. "우리편은 열세이기 때문에 진중권이나 허지웅 같은 이들은 우리에게 필요가 없다"라는 포스팅. 이 말과 비슷한 걸 가져와 보자. "한국은 아직 발전중이기 때문에 지금은 대통령을 비판할 때가 아니다" 익숙한 스멜이 나지 않는가? 근데 사실 저 트윗이야 말로 김어준식 정치. 혹은 나꼼수가 표방하는 정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글이 아닌가. 이 완벽한 논리적 대칭성이라니. 아름답다 못해 아찔하다.


 '이명박과 공정택을 낄낄대며 성토하다가도 곽노현의 눈을 봤는데 그럴 분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나꼼수'(허지웅)가 말하는 정치란 대체 뭘까? 우리편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새끈한 대표. 그리고 거기에 대한 감정이입과 전방위적 지원 정도다. 거기서 이성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고 "반지성주의"라는 비판은 김어준이 쿨하게 "씨바"라고 하는 말 하나에 안드로메다로 직행한다. 그 뒤에는 문재인이 삼성을 잡아줄거라는 '조금만 이성적'이어도 헛웃음 칠수밖에 없는 기가막힌 상상과 정치의 최대치를 노무현으로의 복고 정도로 축소시키는 빈곤한 상상들이 손에 손을 잡고 따라온다. 여기에 당연히 김진숙,비정규직,쌍용차,기륭,경제적 보수성에 대한 고찰. 제대로 된 시스템등이 설 자리는 없다. 사실 이것들이야말로 가장 핫한 정치적 의제이며 정치가 정말 다뤄야 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 '닥치고 정치'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이성과 피로함에 대해서 이 책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예를 들자면 그가 그렇게 공격하는 삼성이 노무현과 얼마나 끈끈한 파트너쉽을 가졌었고 얼마나 부동산 시장을 개판으로 몰아갔는지.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대중정서가 택했던 것이 '이명박'(혹은 디워나 황우석)이었는지 등을 그는 너무나 매끈하게 '씨바'를 되뇌이며 피해간다. 그런 피로함들을 뒤로 한 이 책의 내용은 크게 나누자면 1.각종 정치인들의 평가(라고 쓰고 문재인 빨아주기라고 읽는다)2.각 정당들에 대한 평가 3.이명박 뒷담 4.노무현 그리워하기 정도인데 사실 4는 뭐 그럴수도 있다. 스스로 노빠라는데 그걸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적어도 그런 팬클럽스러움을 모두가 가져야 할 정치적 스탠스 내지는 교양인것처럼 여기지는 말자. 정치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피로함을 갖다 버린 자리에 남는게 정치일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내달리다 종국에는 이들의 신전 안에 그 어떤 비판도 허가하지 않는 궁극의 우상으로써 대중이 남는다. 대중감정, 대중정서. 의리. 진중권이 지적하다시피 정확히 정치인들과 조폭이 즐겨쓰는 논리다. 그게 우리편이라서 다를 수 있다고 한다면야. 어디 저기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이야기들도 들어보시죠.그들이 원하는 그런 정치의 모습을 한나라당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노동문제? 환경문제? 대중이 별로 안 원하니까 얘기하지마. 


 참 기가 막히게도. 한국은 이미 끊임없이 그런 정치를 해왔다. 피로함에 대한 증오. 이성에 대한 증오. 시스템에 대한 무시. 지역감정이야 말로 "우리편"과 정서의 극을 보여주는 정치방식이 아닌가? 우리가 말하는 정치란 그와 다르다고 해봤자 아무 힘이 없다. 그들에게도 그들의 정치가 정정당당했을테니. 그렇다면 우리가 정치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건 어느 쪽이든지 이런 종류의 정치를 집어치우라는 것이지 "야 우리편을 응원하자!"라는 종류의 말은 아닐 것이다. 아이고. 세상에..김어준은 대한민국을 초원복집으로 만들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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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인. 그리고 제대로 된 정치가란 엔터테이너,선동가와는 다르다. 김어준이 말하듯이 대중정서에 부합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전부라면 우리가 다다를수 있는 곳은 지난 대선 이명박에 대한 열광과 몇년 전 PD수첩을 잡아 죽이자던 국민 대다수의 감정일 뿐이다. 문재인 다음은 김문수가 올 것이다. 박근혜가 되는게 대순가? 그게 대중정서인데. 대중정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더이상 성소수자와 외국인 노동자가 설 자리도 없고, 학벌도 철폐될 이유가 없다. 그때마다 김어준과 같은 이들이 하게 될 이야기는 결국 또 반복될 것이다. 정서의 문제라고.


 아 물론 감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은 감정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정치는 감정이면서 이념이 아니던가. 우리는 항상 이성과 이데올로기를 비웃는 자들을 궁휼히 여겨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유토피아를 스스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불쌍한 자들이 아닌가.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정치의 증발을 보여준다. 


 김어준과 같은 대중신봉자들은 결국 그들이 "쫄지마"라고 외치는 대상이 그들이 가장 증오하는 것들을 재생산해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거나 모른채 지나간다. 정치적 냉소는 이성에 대한 냉소로부터 비롯한다. 이성에 대해서 냉소하면서 정치에 대해서 긍정한다면. 사실 그때의 정치는 정치일수가 없다. 믿다가 배신당하고 다시 믿다가 눈물짜는 아침드라마만 한바탕 펼쳐질 뿐이지. 실제 세계가 가진 피로함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이 세계와 정치를 혐오하게 될 수밖에. 그게 낭만주의자들의 한계 아니던가?


 박권일이 말하는 "안철수에 대한 지지의 근본은 사실 이명박에 대한 지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소리는 "대중정서에 맞지 않는 고루한 소리"일 뿐이지만. 결국 그 말들이 맞았음을 시간은 증명해 줄 것이다. 물론 그때도 박권일보다 김어준이 더 잘 살겠지. 근데 그렇게 대중을 믿으면서. 노무현을 죽인게 언론의 농간과 그에 놀아난 우리들이라고 말하는 그들은 대체 대중을 엿으로 보는건가. 아니면 황금송아지로 보는걸까. 나는 박근혜 당선 때 김어준이 무슨 말을 할지 너무나 궁금하다.


 더군다나 서동진 선생의 지적대로라면 이제 정치는 '대표'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대표되어야 할 시민이나 대중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데에 있다. 지나가는 사람 10명을 붙들고 물어바라. 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 이제 더이상 우리는 서로를 같은 시민이거나 같은 계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체성의 중요한 기준은 취향의 총합으로서 결정된다. 대표를 뽑을때 중요한 건 그가 내 이익관계를 어떻게 대표해줄가가 아니라 멋있고.새끈하고,곧고 하는 등의 이미지와 감정이입 여부이다. 그러니 나꼼수와 닥치고 정치가 새로운 정치교본이 될 수밖에.이런 상황들이 정말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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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꼼수>는 재밌다. <닥치고 정치>도 분명 재밌다. 김어준은 분명 사람들 대다수의 정서와 그들이 뭘 원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잘 표현해낸다. 정말 답없는 진보정당의 지지자로서 그런 능력이 너무나도 탐이나고 부럽다. 딴지일보를 만들어낸 인물인 만큼 분명 다른 사람들보다 돋보이는 통찰력도 존재한다. 그러나 맘에 안들면 계정을 새로 만드는 것처럼 삶을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 방법이 없는 바에는 삶을 다루는 정치에 있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나는 모든 사람이 무엇도 신봉하지 않고 모든걸 의심하면서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원한다. 돈이든,대중이든. 신봉의 대상이 되는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볼수도 바꿀수도 없다. 정치가 그냥 정서와 편먹기의 문제라면 대체 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가 있는가? 언제나 우리 뺨을 가열차게 때리려 각오하고 있는 50%의 어버이연합이 존재할텐데 말이지. 신들끼리의 싸움은 화해가 불가능하다. 나는 차라리 싸움을 해야 한다면 신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피로함을 감수하는 무기력한 자들의 전방위적이고 냉소적인 싸움을 원한다. 우리편 먹기와 감정싸움. 스타정치. 그리고 야화들을 꺼내서 낄낄거리는 것이 그게 그가 생각하는 정치라면. 듣기 좋은 소리 하는 것이 감성적 터치라면. 나는 진심으로 그 기획의 실패를 기도한다. 그나마 제정신이 박힌 진중권이 절필을 하고 허지웅이 욕을 바가지로 먹으며 영화 <도가니>가 세상을 바꾼다는 이런 말도 안되는 환경에서 그 기획의 성공은 이미 이루어진 것 같아 보인다. 2007년 12월에 너무나 뼈아프리만치 실패로 돌아간 그 기획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