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의 줄타기인생(5)
에딘버러 페스티벌 준비를 시작할 당시, 5월까지는 공연의 초안을 만들어서 안산국제거리극에서 테스트 해 보자고 이미 계획이 짜여져 있었다. 문제의 5월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왔고, 다행히 3월 말~4월 초에는 공연의 각 파트들이 완성되어있어서 파트를 조립하기만 하면 됐다. 그치만 10월부터 5월까지 장장 7개월을 준비를 한 탓에 막상 안산국제거리극이 닥치니 우리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전에는 길게 준비해봤자 기껏 2개월 정도였다. 과연 7개월 동안 준비한 공연이 잘 될 수 있을 것인가. 망하면 어떻게 다시 짜야하나.
더군다나 안산국제거리극 첫 공연을 하러 가기 몇시간 전에 매년 어린이날 치루는 신당동 어린이날 축제 공연에 우리의 중요 파트들 (원핸드 팀플,오프닝)을 올려본 결과가 아주 엉망진창(..) 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는 상태였다. 참고로 안산 국제거리극 당시 공연 큐시트는 다음과 같다.
파트 | 내용 |
오프닝 | 현웅-대열-동훈 오프닝 |
멘트1 | 대열이 멘트 및 팀 소개. 동건이 부각 |
카운터 | 현웅이 프리스타일. 동건이가 레드카펫 깐다. |
멘트2 | 대열이 멘트 |
오프스트링 | 현웅-대열-동훈 같이 오프스트링 |
투핸드 | 동훈 프리스타일 |
멘트3 | 대열 멘트 및 동건 준비 |
원핸드팀플 | 다같이 스윙 베이비 |
멘트4 | 대열 마지막 멘트 |
롤러코스터 | 관객과 함께 |
엔딩 | 다같이-대열 동훈 끝나고 동건 솔로함 |
다행히도 막상 공연을 시작하니 관객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2009년 안산국제거리극 공연을 보고 또 왔는데 이전보다 훨씬 재밌다는 관객 분들도 계셨다. 첫날을 성황리에 마치고 나서 들뜬 마음에 다음 공연 장소를 봤다. 근데 아뿔싸. 축제의 메인 공간인 25시 광장에서 우리의 남은 일정을 치루는 게 아니라, 광장에서 꽤 떨어지고 외진 홈플러스 뒤쪽 상가에 남은 공연 4개가 다 잡혀있었다. 축제 참가 이전에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막상 가 보니 공연에 적합한 장소도 아니었고, 유동인구도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첫날과 그 이후날 장소 비교..저 한산한 사람이 보이는가?)
주최측에 이런저런 사정을 해 보았지만 이게 잘 될리가 있나... 이미 스케쥴은 나와있었고 문제가 있다 생각한다면 미리 이야기하고 조율하는게 맞는 것인데 축제 당일날 장소변경을 요청한다니 주최측에서 우릴 얼마나 우습게 봤을까? 결국 홍보공연도 하고 하면서 약간의 사람들을 끌어모아 공연을 남은 이틀동안 치뤘다.
그래도 앞으로 참가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축제인데. 이게 어쩌면 마지막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울적해 했지만 공연을 나쁘게 짜지는 않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에딘버러까지는 2개월이 남아 있었고 남은 기간 잘 준비하면 에딘버러 가서도 좋은 공연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티켓도 다들 발권해놓은 상태이니 여비만 모으면 됐고, 이대로만 쭉 가면 되겠지.
참가 신청의 경우, 대열이가 알아본 결과 5월부터 신청을 받는다고 해서 안산이 끝날 때 까지 아무런 신청을 못하고 있었다. 그치만 내심 불안했는지 다들 5월 쯤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에딘버러 갈 준비가 다 되었는데 비행기를 놓친다던가, 가니까 신청이 안되어 있어서 못하게 되었다던가..우리는 불안한 마음에 대열이를 재촉하기 시작했고 정말 다행히도에딘버러 프린지는 5월 중순부터 접수를 시작했고 대열이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근데.
35분? 안산 공연의 경우 30분이 채 안됐다. 아니 20분을 조금 넘겼던가? 어차피 영어권 국가로 공연을 하러 가는 거라 지금처럼 멘트가 많은 공연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공연을 좀 바꿔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35분~40분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니..이게 무슨 소리요. 즉, 멘트도 없애고 (최대한 넌버벌로) 시간도 늘려야 하는 상황이 닥쳐버린 것이다.
나중에 2009-2011 안산과 2011 에딘버러 버젼 공연 영상을 같이 올리면 알겠지만 2011년 5월에 짠 공연은 멘트가 공연 시간의 거의 절반이었다..사실 새로 짠다고 짰고, 많은 것을 일신하긴 했지만 아직도 멘트의 비중이 너무 컸던 것이다. 사실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수는 없는 노릇이니 남은 시간동안은 안산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동시에 극을 넌버벌 퍼포먼스에 최대한 가깝게, 시간은 길게 수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산까지 오는 과정이 너무 고됐기 때문에 2주 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 일단 왜 넌버벌 퍼포먼스로 해야 하는지를 설득한 다음 어떻게 짤 것인가 회의했다. 프리스타일을 길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몇년 전부터 우리는 공연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많은 기술이 아니라, 클라이막스에서 어려워 보이고 화려해 보이는 기술을 터트리되 거기까지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연출이라는 점에 대해 합의를 보고 있었다. 시간을 늘리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기술을 늘리는 것이긴 했다. 하지만 이건 이미 2009년부터 포기한 방법이었다. 개별 프리가 길면 길 수록 요요매니아가 아닌 이상 사람들의 흥미도는 낮아지기 마련이고 우리의 그간 경험을 생각해 볼때는 길어도 2분이 적당했다. 프리를 늘리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멘트가 한번도 안들어가기는 어렵겠지만 각 캐릭터의 감정을 호루라기와 같은 소품을 통해 표현하기로 했고, 공연의 기본 골격은 가지고 가되. 사실상 관객과 하는 파트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안산 공연에 관객 파트도 넣고, 시간을 늘리기 위한 다른 파트들도 추가하기로 했다.(요요가 아니더라도) 그밖에 동건이의 여자친구분이 해준 조언에 따라 지금 동건이만 가지고 있는 명확한 캐릭터를 다른 세명에게도 부여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그렇다면 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딴게 있는 게 아니었다. 요요기술을 더 넣을 게 아니라 캐릭터를 나타낼 수 있는 파트들과 마지막 반전에 개연성을 부여해주는 파트, 그 과정과정에서 관객도 같이 할 수 있는 파트를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는 팀원들 넷이 다 골치가 아팠다. A4 용지 한장만 써서 제출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모든 문장을 완성시켰는데, 알고보니 1장 반에서 2장이라고 할 때의 그 당혹감들. 이미 안산을 한번 치뤄서 그런가. 여름이 다가와서 그런가. 그냥 이왕 이리 된거 다녀오는 데에 의미를 두자는 생각도 종종 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안산이 끝난 이후부터 에딘버러행 비행기를 타기까지가 우리 공연 프로젝트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7개월 동안 한번도 안싸우던 우리는 그 남은 2개월 동안 몇번 싸웠고, 불안해했고 서로 불만도 많이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기가 막힌 팀이라는 생각밖에(좋은 의미에서)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