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부정과 긍정의 사이.

leedong 2012. 8. 12. 20:17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을 드디어 읽었다. 미국에 만연한 긍정주의의 폐해를 역사적 근원에서부터 차근차근 파헤치는, 읽기도 쉽고 심도도 있는 훌륭한 책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숨이 탁 막혀왔다. 미국 만큼은 아니지만 한국도 딱히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긍정적으로,낙천적으로,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라. 내가 애시당초 주인이 아닌데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은 그야말로 기만이 아닐까?


 늘상 느껴왔던 일이지만 우리는 항상 이 '부정적 세상'에 항상 '긍정적'이기를 강요당한다. 근데 나는 절대 긍정적일수 없는데. 여기서 긍정적인 것은 정말 이상한 것 같은데. 이건 뭘까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말도 안돼는 우화들을 써가면서 노동자들을 독려하고, 장래를 약속하겠다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상시적으로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 자세가 안되어있다면 끌어낼 것이다.등의 말로 해고를 들이밀곤 한다.


  물론 불평불만 있는 사람은 항상 같이 있기 싫은 대상이다. 나 조차도 그렇다. 얼굴이 음울하고 불만만을 이야기하는 이를 누가 친구로 두고 싶겠는가. 하지만 나는 마냥 모든 것이 잘 될것이라고 믿으면서 웃기만 하는 긍정주의자들도 친구로 두고 싶지 않긴 마찬가지다. 별로 희망도 없어 보이는 곳들에서 "너의 의지로 이겨내라"라는 말을 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다. 비관하되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없는 것일까.


 긍정주의가 만연한 이 반대편에는 정확히 파국을 믿는 심리들이 있다. 세상엔 아무 문제가 없고 내 스스로만 마음을 잘 먹으면 될 것이라는 "일체유심조"의 흐름과 그를 뒷받침 해주는 온갖 종교지도자와 자기계발서들의 지원 반대편에는 지구종말에 대한 작품을 소비하고 파국을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 두가지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책없는 긍정도, 파국도. 그 속에서의 세계는 내가 도저히 어찌해볼수 없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 두가지 세계의 사이에 그래도 '세상은 변할 수 있고 우리는 행동해야만 한다'라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의 수는 너무 적고, 양 극단은 너무 많다. 서동진 교수의 말마따나 '혁명은 믿지 않으면서 파국은 믿지 않는 시대' 아니 우리삶에 필요한 작은 변화조차 어떤 '파국'으로 소비되는 시대인데. 여기서 월급쟁이의 삶은 대체 어떻게 흘러갈 수 있을까. 나는 분명 한달 전 친구와 세상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우리가 행복해질 틈새는 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지만. 정말 그런 틈새가 있는지 요즘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