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에 대하여
얼마전 술을 먹을 때 안주가 별로라며 성질내는 옆자리 아저씨를 보았다. 옆자리 사람들이 불쾌해 할 정도의 태도였는데 정작 그 사람은 너무나 당당하게 할 말을 다 하고는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꼰대들은 원래 그랬던 게 아니라 세상 사는 피로가 너무 누적되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피로는 자기가 쌓은 부와 명예랑은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들 수록 너그러워지면야 좋겠지만 나이가 들 수록 피곤한 거라면. 피곤한 자에게 자비를 구하는 것은 짚단에서 바늘찾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기사 생각해보면 꼰대들은 항상 뭔가에 쩔어있는 아저씨들이 대부분이다. 직장에 찌들고 가정에 찌들고.
여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요즘의 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아직까지는 눈이 빠지게 바쁘거나 한 건 아니다. 그러나 28년을 유지해온 생활과는 전혀 다른 삶이 이어지고 있고, 아직 나는
여기에 크게 적응을 하지 못했다. 잠은 부족하고, 직장에 어떻게
애정을 가질 것인가는 아직도 나에게 큰 과제이다. 신입사원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라는데
그런 건 없다. 아마도 내 20대를 계속 끌어온,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될 어떤 생각들 때문일 것이다. 뭐 2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던 간에, 이런 저런 이유로 이전의 삶보다 피로도가 높은 건 사실이다. 그와 더불어 마음도 급해지고, 속도 좁아져 나이어린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 피곤하니까 나를 조절하지 못한다. 사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정을 티 내지 말자, 항상 너그러워지자. 뭐든지 열심히 하자- 라고. 아침마다
삼각지 가는 버스 안에서 다짐하지만 그런 초인적 경지가 그렇게 쉽게 될까?
그런 짧은 생각들을 하다 보면 그 아저씨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일하는 사람들에게 삿대질 하는 그 모습은 심히 불쾌하지만 그 심리상태를 왠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나면 이해가 아니라 동의를 할 지도 모르겠다. 일로 인하여
시간을 잃고 피로한 사람들의 낙은 소비 뿐일 것이다. 그런 삶을 사는 이가 시간이 지날 수록 성격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길은 꼰대뿐이란 말인가.
요즘의 나는 내 몸이 불편하면 진보적인 태도 따위는 걷어차버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24살로 돌아간 기분이다. 소비가 아닌 다른 낙을 찾아야 하고, 내가 처한 물적 환경을 인정하더라도 그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어떤 지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럴려면 나는 계속 읽고, 계속 쓰고, 계속 듣고, 계속 요요를,공연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이전처럼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치 않는 모습이 되기 위한 도망의 수단으로서, 절박한 마음으로 이런 것들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잘 웃고 잘 느끼고 잘 표현하는 즐거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