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원인이야 수도 없이 많겠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구부득고)을 불행의 원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아마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장 큰 구브득고 중 하나는 '예술에 대한 열망' 혹은 '창작에 대한 열망'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것은 대열이가 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왠 쌩뚱맞은 소리냐고? 한번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도처에 예술작품이라 불리는 것도 넘쳐나고, 예술을 위한 도구도 넘쳐나고, 그 모든것이 마냥 쉬워만 보여서 마치 마음만 먹고 시간만 있으면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과 무관하게 현실을 재 해석하고 사람들을 매혹시킬만한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들은 소수뿐이다. 만약 대중 모두의 수준이 높아진다면, 그 높은 수준 내에서 또 상위의 감각을 지닌 예술가들이 존재할 것이다. 어느 곳에나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은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는 이론이듯이, 도처에 널린 모든 것이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에 예술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예술이라는 것이 존재하려면 그 반대인 비예술, 혹은 일상 등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현실을 재해석해 내고 어떤 각성이나 실천,상처를 남기는 것을 예술이라 한다면 '즐길수 있는 예술'이라는 말 만큼이나 우스운 일은 없을 것이다. 즐길수 있다. 그냥 그때 웃고 떠들고 지나치면 잊을 수 있는 걸 우리는 '즐길 수 있다' 라고 말하곤 한다. 예술이 그런 것이라면 예술이라는 말에 '모두가 즐겨야 한다'라던가 '고귀한 것'이라는 말 모두를 뺀 채 그냥 무심코 말하는 '안녕'이라는 인삿말 정도의 의미만 둬야 할 것이다. 즐기라는 유혹과 고귀해야 한다는 강박은 둘 다 동전의 양면이다. 고귀할 수 없으니 거리에 내려온 광대라도 되어야 할 일이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들이 항상 소수인 이상. 모두가 예술가가 되고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추동하는 것은 그것이 자본의 의지이건 무엇이건 간에 기만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예술활동을 할 수 있을만한 여가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현실'만큼이나 모두가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우리 대다수는 예술적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 우리 중 대부분은 남이 해석해놓은 현실을 자기 해석인 것 처럼 답습하면서, 그것이 마치 내 오리지널한 생각인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지금 내 글이 그렇듯이) 그리고 착각 속에서도 간간히 우리는 너무나 냉정하게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다. 우리에게 예술적 재능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남의 작품을 소비하며 부러워하지는 않겠지.
무심코 보게 된 매끈한 디자인을 보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서 평생 먹고 살 만한 돈을 버는 이들을 보면서. 우리를 웃거나 눈물 흘리게 하는 작품을 보고 나오면서 우리가 느끼는 어떤 저릿한 허무감이 그런 종류의 깨달음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예술적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메세지는 우리를 유혹했다가 우리의 엄연한 경제적 현실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불행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가 행복해지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그 예술적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경제적 여유,성공과 밀접한 유착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은폐된 세계에서는 더 그렇다. 독서건 영화건 미적 취향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경제적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데에 얼마나 많은 재능과 시간이 필요한지를 은폐한 채 예술적 취향과 활동이 '자연스러운 어떤 것'처럼 여기도록 부추기는 세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