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글을 쓴다. 일은 많았는데 쓸 힘이 없었다. 요즘은 글을 쓸 엄두가 안난다. 무슨 재능을 타고났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블로그에 쓰는 잡문과 리뷰 정도는 맘먹고 무리없이 쓸 정도였는데 요즘의 나는 단어를 구걸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같다. 말도 마찬가지다.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긴장하고 위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
그간 본 책만 해도 대여섯권, 공연만 해도 서너편이다. 이 리뷰를 다 언제 쓸까? 바로 쓰지 못한 탓에 시간이 흘러 공연과 책의 생생함이 사라졌다. 그렇게 되고 나면 결국 남의 글을 참고해가며 남의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그것 또한 나쁘진 않지만 최선은 아니다.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3개월차 징크스가 오고 말았다. 회사에서 바쁘게 업무를 하고 있다 보면 이게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때가 많다. 역설적으로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금 현재 내가 딱히 원하는 일이 뚜렷히 없기에 이 상황들을 버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허무한 이 기분. 그리고 이게 왠지 계속 반복되다 끝나버릴 것 같은 기분을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물론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이 일을 1년 혹은 2년정도 하다가 일을 바꾸게 될 계기가 있을 것이고 이 일을 계속하다보면 나름대로 인사이트도 생기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업무에 익숙해지느라 바뻐 아무것도 생각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어떤 답답한 느낌들이 덮쳐오곤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게 그냥 막연한 느낌인지, 아니면 정확한 직감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가봐야 알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묵묵히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뿐이다. 들어오기 전에 가장 하고싶었던 분야가, 이제는 결국엔 하지 말아야 할 분야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사람이 힘들거나 그런게 아니라 그냥 이 업의 특성이 그래 보인다.
업과는 별개로, 사회생활에 있어서 '남자들'의 모임이 버거울 때가 있다. 분명 장점이 있지만, 남자들의 세계라는 것이 갖는 특성이 내게는 너무 낯설기만 하다. 연장자를 무조건 챙기는 것도, 여자에 대해 말하는 방식도. 노는 방식도. 종종 내가 견딜수 없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이 올바르지 않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기질적으로 나와 많이 다름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도 겪어보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솔직한 요즘의 내 심정이다. 내가 생각했던 세계를 벗어나서 다른 세계를 겪어보고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게 내가 취직에 대해 기대했던 바가 아니었나.
물론 룸싸롱 가서 잘 놀고, 이성을 잘 꼬시는 것이 어른은 아닐 것이다. 어른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세계 속에 갇히지 않는 것을 뜻할 것이다. 또한 어른은 한때 내 자신이 부정하려 했고 욕했던 세계들 또한 엄연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으며 자신이 사는 세계 혹은 살고자 하는 세계가 그러한 세계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것이 있어야만 정말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 수 있게 되겠지. 그렇지만 정말 그게 쉽지가 않다. 이 거부감. 답답함. 아침이 싫은 이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