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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150만원과 내공의 시대.




월향 매니져 모집 글

 위에 링크한 홍대 막걸리 전문점 월향의 인력공고가 인터넷에서 화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장이 요구하는 인재상은 슈퍼맨급인데, 처우는 수습기간 동안 150만원이라는 말 말고는 두루뭉실하다. 좋은 인재엔 그만큼의 돈을 더 줘야 한다는게 일반적인 상식일 게다. 물론 그것이 함정이 되어 발목을 잡기도 한다. "좋은 인재"의 판단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인적성과 면접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들이대도 운과 주관이 작용하는 마당에, 사장 개인의 주관으로 뽑는 '좋은 인재'라는 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이 공고를 둘러싼 입장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1)요즘 세상에 수습기간 세후 150만원에 이런 특전 주는 거면 좋은 기업이다2)요구하는 스펙에 비하여 150만원+a는 부족한 처우이며 열정노동착취의 사례다. 사실 이 두가지 입장은 좀 단순화해서 말하면 고용주의 입장과 노동자의 입장 두가지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고를 어떻게 내건 그거야 뭐 현행법을 어기지 않는 한 사업주의 자유다. 그러나 이 글이 화제가 되는 것은 드러나는 어떤 결들이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게는 성차별은 안하지만 여자매니져를 원한다는 말에서부터 150만원의 슈퍼맨이라 할 만한 독특한 구인광고까지.


  화려한 수식어구와 자의식 과잉의 글을 보고 있자면 "이제 커피뽑는 노동자나 꽃집 자영업자를 솔직히 부르지 못하고 바리스타나 플로리스트라는 말로 그 노동의 피로함을 은폐한다"라는 서동진 선생의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노동력에 대한 실질적 보상이 적을 경우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수많은 미사여구와 비금전적 보상에 대한 변명인 경우가 많다. "가족적 분위기, 자아실현,인생의 큰 경험"등등. 그러나 좋은 직장의 기준이란, 이 세상이 돈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해나가야하는 세상인 이상 무엇보다도 노동력제공에 대한 정당한 금전적 댓가와 고용안정,권익 보호여부일수밖에 없다. 이 댓가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그 일에 수많은 스타일리쉬한 이름들을 붙여서 허한 마음을 달랠 뿐이다. 


  사업주 입장에서 보면 모집공고를 인터넷의 화제거리로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마케팅이고, 어떤 이에게는 좋은 동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마냥 최악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열정만을 운운하지 않고 고생한만큼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금전적보상과 복지를 주겠다고 나름의 확신에 차서 말하는 점은 괜찮다. 막말로 좋은 일 한다고 뻐기며 애들 월급도 제대로 안주는 소위 사회적기업들보다는 훨씬 낫다. 외국어 능력자 데려다가 100만원 주겠다는 kbo보다 훨씬 양심적인 것임은 말할바가 아니다. 더군다나 실제 계약서가 어떤 형태일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단순히 공고만을 저렇게 한 것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업주의 악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이 나타내는 어떤 인식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일이 좀 더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사업주가 나름의 포부도 가지고 있고, 비전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의미도 생각하는 이일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내공이 중후한' 자격에 대해 자신이 공고에서 밝힌 대우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월향 사업주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임금 제대로 받기 힘든 세상에 산다. 중후한 내공에 한 사업장을 제대로 관리할만큼의 능력과 경험을 갖춘 20대 여성에게 150만원+a를 주는 것이 정당할 수 있는 세상인 거다. 


 그러나 다시, 일하는 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아무리 불경기에 비정규직 시대라지만 기준만 봐서는 왠만한 기업 대리-과장급의 수준을 가진 이에게(아니 거기서도 저런 급이 있나?) 월급 150만원 주겠다 말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 차라리 단순하게 매니져를 구하며, 면접 후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월급은 150만원이라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어색하게 보이진 않을 것이다. 너무나 자신있게 그것이 충분한 보상인듯 말하는 건 사실 거의 블랙코메디로까지 느껴진다. 


 요 근래 우리의 인식이란 열정노동의 합리화-사업주의 입장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이 '열정적인'공고야말로 어떤 합리적 보상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불합리해보인다고 느끼는 것은 내 예민함일까. 혹은 '우리는 고급직장이니 너 말고도 할 사람 많아'라는 인식이 보이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공고가 낯설어 보이는 것은. 이전 열정노동착취자들이 "너에게 이런 소중한 경험을 주니 돈은 적게 줄께" 정도로 이야기 했다면 이 경우엔 "너에겐 경험도 충분히 주고 금전적 보상도 충분히 주겠어!"의 뻔뻔함이 글 도처에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 사장님은 언제 매니져를 짜르고 언제 매니져를 냅둘 것인가? 매니져에게 요구하는 내공이라는 것은 측정 가능한 것인가? 그것은 사장 마음대로겠지만 그걸 합리적인 방식이라 말하기에는 많은 설득의 자료들이 필요할 것이다. 혹은 이 낯설음이란 한국사회의 경제지형도라는게 저런 자기관리능력과 침착함,리더쉽을 갖춘 인재가 150만원을 받고 자아실현을 위해 불안정 노동에 몸을 던지는 그런 상황까지 온 암담함이 느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나는 150만원이 쉬운 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 돈 벌어먹고 살기는 최저임금이 올라도 쉽지 않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자의 숙명이며, 더 나아가 경제체제에 상관없이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자의 숙명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150만원 우스운 돈이야!"라는 것이 아니라 150만원이 '충분한 보상'이라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환경이란게 녹록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 공고가 원하는 인재상의 수준을 따져본다면 150만원을 이야기하는 건 코메디로 느껴진다. 서울지역에서 비정규직으로 살며 생활을 꾸리는 이에게 150+A란 좋은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금액일까? 우리가 월향 공고를 보고 "수습 150만원이면 돈 많이 받는거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은 슬픈 이야기이다.


  물론 월향이 약속하는 많은 복지들은 실제 계약서에 반영될수도 있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어쩌면 월향에서 일하는 이들은 회사에서 일하는 나보다 훨씬 자아실현에 성공하며 행복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타인의 행복 가능성이 아니라 모두가 공통으로 처한 어떤 상황과 인식에 대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훌륭한 자질을 갖춘 인간을 "150만원+a"에 쓰겠다는 시대, 그것이 정당한 대우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 나름의 조건을 갖추고 매니져가 된 이가 실수할 경우, 그녀는 월향의 매니져를 계속 할 수 있을까? 글쎄 알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