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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연

[0112] 용의자




-용의자를 심야로 관람했다. 처음에는 예고편 보고 그냥 망삘나는 액션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아저씨/베를린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다.

-액션영화에서 액션은 단순한 표현 도구가 아니라 부분이면서 전부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액션영화는 액션 자체만으로 쾌감과 전율을 주는 '몸으로 말해요'가 되어야만 비로소 액션영화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보통 액션영화를 킬링타임용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지만 잘 만들어진 액션씬은 감동적인 대사나 미장센 이상으로 우리를 그 순간에 못박아놓고 두고두고 꺼내보게 한다. 

-다른 장르이긴 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나는 사람들이 애국가 장면 때문에 두고두고 씹는 <국가대표>가 너무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스키점프의 쾌감이 잘 살아있을 뿐 아니라 그 순간의 인물들의 감정이 스키 점프씬에 너무나 잘 녹아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요 2~3년 사이에 봤던 많은 액션영화 중 정말 훌륭했던 액션영화에 엽문 1편과 아저씨와 베를린을 꼭 꼽는다. (테이큰은 개인적으로 좋은 액션물이라고 하기가 좀 애매하고, 일대종사는 액션이 그저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용의자도 이 세편의 영화와 비교해서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영화다. 뭐 하나 빼놓을게 없는 액션씬들로 가득하고, 대사나 머리싸움은 간략히 요약해 액션씬을 진하게 농축시켰다. 

-액션을 떠나서 이야기해보면, '베를린'에서도 느낀 것 처럼 남북을 다루는 데에 있었던 민족이니 ,동족산장이니, 통일이니 하는 엄숙주의는 갈수록 더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은 북한이 소재의 일부일지라도 희석되서 딱히 북한이 아니라 다른 관계로 대체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형태로 반영된다. (물론 북한으로 설정하는 것이 우리가 재밌게 느끼기는 훨씬 더 좋다) 

추상적인 악의 형태로 북한이나 국정원이 존재하지만, 영화 속에서 뛰고 기고 고생하는 것은 어찌되었건 조직의 개개인들 혹은 조직에서 쫓겨난 고뇌에 찬 개인들이다. 때문에 북한이라는 설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게 되어버렸다. 북한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 십년전까지만 해도 대중영화에서 북한을 다루던 방식을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이런 흐름들이 재밌는 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다. 하기사 현실에서도 이제는 '북한 따위' 다.

-베를린 표종성(하정우),용의자 지동철(공유),아저씨 차태식(원빈) 콜라보레이션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해 가던 표종성은 잠시 들린 중국에서 딸을 구출하다 궁지에 몰린 지동철을 구해준다. 지동철은 이에 대한 답례로 표종성의 입북을 돕던 중, 자신의 아내를 죽인 북한 요원들을 보낸 지시자가 바로 동중호(명계남)임을 알게 되어 복수의 마무리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데..북한 요원 전성시대. 차태식은 어디에 넣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