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평생 묵묵히 일만 해온 LIFE지의 네거티브 필름 담당자 월터 미티는 LIFE의 폐간을 앞두고 프리랜서 사진사 숀이 보내준 LIFE지의 마지막 표지용 사진을 잃어버린다. 결국 외국 한번 나가본 적 없는 월터는 그를 찾기 위해 그린란드로 떠난다.
내용을 들어보면 울 만한 영화가 아닌데. 이 영화를 보면서 엄청 울었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다. 원래 영화 보면서 잘 우는 편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유별났다.
조금 더 (쓸데없이)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월터>는 정말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현실의 고통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다. 그리고 너무 이데올로기적이고, 스토리가 짜임새 있는 작품도 아니다. 일하는 이들을 칭송하지만 그 칭송이 공허한 영화다. 당신은 언제든 여행을 갈 수 있어-라고 말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우린 다 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무서운 점, 혹은 아름다운 점은, 영화의 영상과 음악을 보고 듣다 보면 '월터 미티를 포함한 일하는 이들을 칭송하면 뭐? 그들의 해고를 막을 수 있나? 그들의 실존적 어려움이 사라지나?' 따위의 불손한 생각이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이 찡해진다는 점이다. 영화의 무서움이랄까, 가능성이랄까..
무엇보다도, 월터가 그린란드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망설이다, 결국 Space oddity를 부르며 달려가서 헬기를 탈 때 어찌나 눈물이 났는지 지금 생각하니 좀 부끄럽다. 뛰어나가는 월터 미티의 모습과, 헬기에 타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라고 당혹스러워 하는 그의 어리벙벙한 표정과. 그 장면이 너무 내 마음을 쥐고 흔들어서 울컥했던 기분은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오늘 내가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그랬던 건지. 병신같이 할말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같은 직장생활을 월터 미티처럼 박차고 나가고 싶어서 그랬던 건지. 오랜만에 현실판단을 접어 놓고 영화가 주는 아름다움과 환상과 그 끝에 닿아있는 환상의 현실에 대한 격려를 만끽했다. 영화라는 것을 보기 시작한 뒤 실로 오랜만에 이런 기분들을 실감한 것 같다. 사실 이런 영화를 볼때 너무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사실 좀 미안한 일이다. 켄로치 영화 <빵과 장미>라고 해서 나중에 이주노동자들이 복직되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지 않나. 근데 낭만이 남아 사람의 마음을 그리도 격하게 했던 것이다. <월터> 또한 이야기 내내 사람에 대한 어떤 굳은 믿음과 낭만, 존중들이 깔려 있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이런 영화들은 어찌되었건 마음을 채워준다. 부정할 수가 없다. <세 얼간이>가 그런 영화였던 것 처럼.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영화겠지만, 이 영화를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게 될 것 같다. 환상에서 오늘 힘을 얻었으니, 이 힘으로 내일의 현실을 이겨내야겠다. 그러라고 이야기들이 있는 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