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이 자자한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를 이제서야 보았다. 중반부 전까지는 워커홀릭의 애환을 다룬 작품 같다가, 중반부에는 돼먹지 않은 프로의식 따위를 말하는 기만 영화 같다가 막판에는 결국 될놈될.
나도 평이한 관람자이기에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결국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 응축되어 있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대화씬. 편집장이 '난 님처럼 살 자신 없음 ㅇㅇ'이라고 하는 주인공한테 '파리 간 건 니 선택이잖아' 할 때는 진짜 죽빵을 날리고 싶었다. 그럴리가 있니..상사가 너 짤릴래 파리 갈래 묻는순간 악마는 결국 편집장인 거지, 주인공일리가 있나.
작건 크건 조직에서 선택권을 가진 상급자가 자신의 강요에 대한 하급자의 순종을 마치 그들의 주체적 선택인 것처럼 말하는 건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재밌는 영화였지만 그 장면의 불쾌함이 쉽게 사라지질 않는다. 사람을 몰아붙여 놓고 뒤에 가서 그것이 너의 선택이었다고, 너도 악마가 된 거라고 말하는 장면은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 더 그렇다. 콧방귀나 뀌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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