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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12/30] 허니버터칩의 소용돌이

 혜성같이 나타난 과자 하나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즐거워하고, 재밌는 밈들이 만들어지고, 비판자들이 등장하고, 못마땅해 하는 선각자들이 등장했다. 먹어보니 맛이 나쁘지 않고, 인터넷을 키니 짤방들이 재밌고, 댓글란을 보니 눈살이 찌뿌려지는 3단계의 과정을 모두 겪을 수 있는 사건이다.  나에게 연말 이슈 중 가장 재밌었던 이슈가 바로 허니버터칩(이하 허버칩)이었던 이유다 우리가 늘상 말하고 배워왔듯이, 주목할만한 상황은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한다. 사회적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 현상에만 집중하거나, 엉뚱한 맥락을 끌어들이는 순간 우리는 우리를 선지자라고 착각하는 위험에 빠진다.

  허버칩에 툭 하면 달리는 댓글들이 아마 그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몸에 좋지도 않은 합성 물질 과자 노이즈 마케팅 그만해라'라던가 '기업이 소비자를 기만한다'라던가 하는 댓글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는 어떤 이들에게는 기업이 윤리적인 하자 없는 선에서 합리적인 이익추구 행위를 위해 활동하는 것 조차 (특히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모든 행위들이) 문제적 행위로 보인다는 것. 물론 이런 인식은 해당 기업이 자초한 것이다. 두번째는 어떤 이들은 사람들의 선호와 세간의 유행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이런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명한 사람들조차도! 

 이런 시점들은 기본적으로 '촛불집회에는 배후세력이 있다' 라던가 '부정선거로 박근혜가 됐다'라는 음모론과 별 다를 바가 없다. 광우병 촛불집회를 발생시킨 정부의 실책과 과거 대비 빨라진 이슈의 확산 및 사람들의 계몽의 정도, 자신의 상상력 부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전자의 주장을 낳았고, 한국 선거시스템의 복잡성과 물리적인 조건, 자신 외의 다른 의견들을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후자의 주장을 낳았다. 물론 누군가는 어떻게 상품과 시민운동,정치를 비교하냐고 발끈하겠지만 두가지가 딱히 구분이 안되는 세상에서 다를 건 또 무엇인가. 다르지 않다면 왜 전자는 후진 생각이고 후자는 현명한 사고란 말인가?

 아래 링크한 한겨레 기사가 사실이라면, 허버칩의 지금 상황은 어쩌다 얻어걸린 상황에서 생산량을 늘릴 경우 오히려 손해일 가능성이 있기에 회사가 신중하게 상품을 운영하는데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사까지도 '노이즈 마케팅을 위한 홍보활동'으로 보는 이들이 존재한다. 아니 설사 그렇다 해도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기업의 활동과 사람들의 취향, 세간의 유행을 기만이나 무지의 상징으로만 보는 이런 시점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물론 상품을 팔기 위한 활동은 사람들의 무지와 허영 같은 어두운 지점을 자극해야만 이뤄지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상품판매의 그런 암울한 측면에서 이뤄졌기에 허버칩 열풍 만큼이나 그 나름의 정당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질소과자 비판이 십년전 사건이 아니라 바로 몇달전 사건임을 생각해본다면 외국과자에 열광하다가 허버칩에 열광하는 이들의 모습을 정상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상품의 성공은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적극적 반응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매의 당사자들이 그 판단을 내릴 때 엄청 거창한 기대들을 하거나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허버칩이 무슨 웰빙음식인줄 알고 찾는 것도 아니고, 없으면 죽는 생필품처럼 여기는 것도 아니다.  마케팅이 사람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이상 상품의 판매란 비윤리적인 상황에 항상 부딪히지만 모든 마케팅이 지옥에 떨어질 만큼 비윤리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단 한번의 맛이 궁금한 것이고, 어떤 이들은 그 과정 자체가 즐겁게 느껴질 것이다. 


해태제과가 물론 이런 상황들을 음으로 양으로 조성하고 즐기는 부분이야 있겠지만 생필품도 아니고 과자인 이상, 제조사 입장에서 충분히 진행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산량이 부족하여 2교대를 3교대로 바꿔야 하니 노동강도 완화 차원에서 생산시설 증설을 하라던가, 해태제과의 경영이 비윤리적이기에 허버칩도 먹을수 없다고 한다면 납득할만한 내용이 되겠으나  일선의 마켓에서 허버칩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 까지 해태제과에 책임지라고 하면 그게 쌀이나 물도 아닌 이상 과연 진지한 논의가 될 수 있을까? 

 정치나 사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매 순간의 선택을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진행하지만, 대부분의 이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것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우리가 더 나은 시각을 가지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다. 나 외의 사람들의 욕망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겪어보고 이해해보는 것이다. 결국 설득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는 이들에게 실행의 책임도 존재한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우리와 저들의 차이란 저들은 그것을 성공했고, 우리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남들과 좀 다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이들이 '합성물질 과자 따위'라고 말하는 것은 딱히 권장할만한 태도는 아니다.

"제과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 상품이 가진 역량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1년 정도는 필요하다. 설비증설에는 수십억~수백억원이 드는데 영업이익률을 고려하면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해태제과가‘품귀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해태제과식품의 올해 3분기까지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4.25% 수준이다. 허니버터칩을 월 60억원어치 판다면, 영업이익은 2억5000만원 가량이다. 자칫 많은 돈을 들여 설비를 늘렸다가 된통 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 제과업체 관계자는 “제품 역량 판단에는 재구매율이 중요한데, 허니버터칩의 경우 아직 수요자들이 ‘첫 구매’도 못한 상황이다. 증산을 할 지 판단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꼬꼬면’의 사례는 섣불리 증산을 망설이게 하는 ‘반면교사’다. 2011년 8월 나온 ‘꼬꼬면’은 출시 직후부터 ‘하얀라면 돌풍’을 일으키며 품귀 현상을 빚었다. 제조사 한국야쿠르트는 그해 11월 500억원을 들여 새 공장을 짓기로 결정하고 투자에 나섰지만 꼬꼬면 등 ‘하얀라면’의 시장점유율은 2011년 12월 17.1%까지 치솟았다가, 꼬꼬면 출시 1년만인 2012년 8월 2.7%로 떨어졌다. 설비투자를 늘리는 대신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생산을 늘릴 수도 있지만 식품 안전·위생에 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높아지며, 중소 회사에 생산을 의뢰하는 방식도 점차 축소되고 있는 추세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