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면접이 끝나고 참 많은 생각을 했다. 3달 가까이 진행되었던 전형에 비해 최종면접은 너무나 허무했다. 40분 정도 진행되었지만 정작 그 중 각자에게 할당된 질문은 3~4개였고, 거기에 대해서 얼마나 잘 답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더운 날씨에 정장을 입고 걸어가자니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붙을까. 붙는다면 어떨까. 떨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렇다면 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붙는다 치더라도 대기업이라는 곳에서 내가 제대로 일을 해나가며 살 수 있을까. 충무로역에서 4호선을 타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많은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내며 면접 이야기로 낄낄 대던 와중에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었지만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쓰러져 잤다.
막상 여기까지 오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왕 이리 된 것 뭔가를 증명하고 싶었다. 남들이 말하는 고스펙이나 취업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아도 내 먹고 살 걱정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살아온 삶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 앞으로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기계발서 하나 읽지 않고 4학년 1학기에 에딘버러에 공연을 하러 다녀와도 취직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초라한 증명이지만 요 며칠 그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 나와 같이 살아오고 나를 좋아해주는 이들의 삶도 같이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그치만 결국 내가 증명한 것은 운이 아닐까. 예감의 대표가 "갑자기 빌린 돈 3억 덕에 살 수 있었다"라고 말할때, '그럼 3억을 빌려줄 친구가 있어야 공연바닥에서 성공하겠군!'이라는 생각이 들 때의 그 기분. 고선웅 연출가가 '긍정적으로 생각해요'라고 말할때의 그 답답한 기분. 그런 것들만을 증명해버린 것 같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결국 모든 것이 운이라는 것이다. 내가 1차면접을 볼 당시 내가 지원한 부서에는 1차면접에 겨우 11명만이 남아 있었다. 최종면접으로 올라가니 4~5명 정도로 또 줄어있었다. 나는 내가 떨어진 수백명의 사람들, 그리고 6명의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거나 잘 살아왔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냥 거기까지 올라간것도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붙게 되더라도 그것은 운일 것이다. 결국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운이다. 운이라고 하니 변덕스럽지만, 나는 옛날 비극작가들이 말한 신의 의지니 하는 것도 결국 인간이 어찌할수 없다는 점에서 운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의 비극이란 결국 운이라고 해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있는 게 아닐까. 열정이 착취된다고 해서 우리가 열정적으로 살지 않을 수는 없다. 노동이 억압당한다고 해서 우리가 노동을 하지 않을수는 없다. 서류,면접,인성. 모든 것이 결국 어떤 순간의 운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안다. 그래도 우리는 자소서를 계속 써야 하고 면접을 준비하고 스펙을 쌓아야 한다. 어쩌겠는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이런 것인데.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다르게 살아야 하지만, 다르게 사는 이들이 살아남을 공간은 존재하지 않고 그것 조차도 운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