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네이버시절/영화/공연

[2012] 범죄와의 전쟁


 자신의 삶을 도덕적으로 꾸리려 하거나. 하여간 남들 안하는 일을 하면서 살려는 자들은 항상 "가족"의 이름으로 공격받는다. 예를 들자면 "니가 데모 나가다가 취직이 안되면" "니가 좋은 곳에 취업을 못하면" -> "가족은 어쩔건데?" 라는 식인데. 이것은 꼭 다른 이들의 비난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강박으로도 자주 작용한다. 이것을 견디기 힘들 경우 택할수 있는 방법은 결혼을 해도 자식을 만들지 않거나. 독신으로 사는 것일 테다.

 그러나 그런 옵션도 지금에서야 가능한 것이지 사실 7,80년대의 한국에서 독신 혹은 무자녀 가정이라는 것은 동성애 가족만큼이나 기이한 형태였을 것이다. 장성하면 이성이 결합하여 가족을 가지고 가족이란 당연히 자식을 동반하는 형태인 상황에서 돈 안되는 짓을 해서 가족을 내모는 것은 그야말로 철없고 무책임한 짓의 전형일 수밖에. 예를 들자면. 얼마전 들었던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80년대 운동권 출신 부모 슬하의 자식들은 부모의 그러한 경력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거나 무관심하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가족을 제대로 부양할 만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 이렇듯 공동체를 위한 혹은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윤리들을 실현하려는 자들은 항상 가족이라는 것과 대척점에 서게 된다. 착하지만 돈 못버는 아빠는 사기꾼 아빠보다도 더 비난받는 존재이다. 이 시대의 가장 설득력 있는 보수주의자인 김훈이 "어른이란 굴욕을 감내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 또한 그런 맥락에 있다.


 역으로. 가족을 성공적으로 부양하기만 한다면 가장은 사실 어떤 종류의 일을 했더라도 존경받고 성공한 삶으로 평가받는다. <범죄와의 전쟁>은 이런 기형적인 한국사회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부당거래>와 비슷하지만. <부당거래>가 각자의 욕망만으로 움직이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현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큰 스케치였다면. <범죄>는 그러한 종류의 부당거래가 가족이라는 핑계로 어떻게 일어나는 지를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아버지 혹은 최사장으로서만 존재하는 "실체가 없는"최익현은 자신의 힘과 자존심으로 움직이는 실체 그 자체인 최형배를 동경한다. 가족을 성공적으로 부양한다 하더라도 그 자신의 욕망은 당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니 최익현은 권총으로라도 자신의 존재에 실체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관계만으로 움직이는 그에게 실체란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가 부러워하던 존재가 아니기에 성공적인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 10억짜리 수첩을 활용하고 자식을 유학보내며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최익현이 자신의 욕망을 참고 가족에만 투철했던 존재라고 말해서야 곤란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는 폭력 말고는 영화 내내 그의 욕망을 다 실현시켰다. 자식에 대한 헌신이라는 것 또한 철저히 그의 욕망에 기초한 교육이 아니었던가? 결국 이 영화는 오히려 그런 존재가 될 때만이 성공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비웃음이자 그간 한국에서 "가족 때문에"라는 핑계로 얼마나 많은 욕망들이 악랄하게 실현되었는지를 고발하는 내용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