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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타인의 연애는 불가지.


 요 근래의 페이스북은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시간 네이트 판"이다. 제목을 보고 고르면 됐던 네이트 판에 비해, 페이스북의 '판'들은 지인들의 좋아요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내 눈에까지 도달한다.  오늘 내 눈에 도달한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남자친구와 사치 없이 각자 알바하며 오손도손 사랑하는 한 여자분이 자신의 사랑이 남자친구가 사준 선물들로 치장하고 다니는 여자애들에 비해 얼마나 건전한지를 말한다. 그리고 향후에는 그들보다 자신의 인생이 훨씬 빛날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자부심 넘치는 글이  5~6명의 지인들 덕에 나의 시야에 딱 하니 들어온 것이다. 글의 내용으로 추정해보건데 아마 이 분의 친구들이 "너 남자친구가 선물 잘 사줘?"라는 식으로 도발을 했던 것 같아 보인다.



내남자친구는 차가없어.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항상 버스를 타고다녀.
우리동네까지 날 데려다주고 자기는 다시 
2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집엘가.
내남자친구는 부자가 아냐.
그래서 나는 백화점에서 이것저것 사달라
고 안해. 우리는 무언가가 필요하면 추운시내를 돌고돌아서 싸고질좋은걸 사.
내남자친구는 열심히 일을해서 자기
용돈을 벌어. 나도 열심히 일을해서 용돈을 벌어. 그래서 우리는 돈을 물쓰듯 쓰질못해.

우리는 대전역포장마차 삼천원짜리 우동을
정말 조아해!!ㅎㅎ자주간다?!
여름에는 비오는날 그리 맛이좋고
겨울에는 눈오는날 그리 맛이좋아
나랑 내남친은 같이 적금을 들엇어ㅎㅎ
겨우 십만원씩 이십만원이지만 우리에겐
매우매우 의미있는 거라생각해!
나는 돈밝히는 요물이아니라서
너희들이 "오빠가 제일비싼선물한게 머야"
라고 물어보면 나는 너무너무 화가 나
니들따위 하루이틀만나고헤어지는 그리고 또
만낫다헤어지고 그런 사랑이 아니야.
너희는 내일 머할지를 약속하겟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10년 뒤 미래를 약속해.
그래서 나는 확신할 수 있어.
니들은 남자친구돈으로 산 옷 구두 가방으로 빛을 내지만 
난 그러케 하지않아도 내 남자친구의 가장빛나는 다이아몬드라는걸



     좋아요를 누른 이유야 다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어떤 훈훈함을 느꼈기에 많은 이들이 이 글에 반응해줬을 것이다. 나도 크게 다르진 않다. 그녀가 그 글에서 보여준 삶의 태도는 분명 건강하고 밝은 것이기에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하는 구석이 있긴 하다. 그러나 무언가 찝찝하다. 

     이런 미묘한 기분은 그분의 삶에서 오는 건 아닐 거다. 어쩌면 그 글이 불러오는 어떤 효과들 때문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다. 우선적으로 그 글에 대한 격한 반응이 된장녀 판타지의 반대급부로 나타는 것 같아 보인다는 점. 그러니까 여자들이 명품에 미쳐 남자들 등골 빼먹는다는 '된장녀 판타지'가 만연한 이 세계에서 이 글은 '개념녀'라는 역겨운 수식어의 좋은 사례로 언급되기 딱 좋을테다. 이런 '미담'을 보며서 괜히 여자들에게 떵떵거리며 너도 저렇게 살라고 말할, 지 인생도 제대로 못챙길 수많은 '남성님'들이 떠오르는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또 한가지.  이러한 글이 세상에 나오게 는 점이 이 훈훈한 미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든다. 작게는 자신의 우월함을 꼭 그런식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하는 불편함도 있다. 

     어쨌든, 타인의 연애는 항상 미스테리이다. 우리는 타인이 어떤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사치스러워 보이는 커플에게 사랑이 없고, 소박한 커플에겐 사랑이 있다고 우리는 쉽게 말할 수 없다. 둘 다 다른 종류의 사랑이 존재할 것이다. 남자친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는 이들 혹은 자기의 연봉으로 좋은 패션아이템을 들고 다니는 이들의 사정을 우리가 일일히 분간해 낼 수 없는 한. 그녀들 또한 된장녀 판타지를 피할 수 없을 게다. 이 뜨거운 반응들 대로라면, 남친의 뜨거운 선물을 받은 이들은 "각자 벌어서 곱게 사는 커플들"보다 빛날수 없는 존재가 되는 걸까? 연애의 양상은 항상 다르다.

     내가 삐딱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알바를 해서 잘 사귀건, 한쪽이 능력있어서 명품을 사주건, 자기 능력껏 알아서 잘 치장하고 다니건 그건 남이 감놔라 배놔라 하면서 훈계하거나 우월 혹은 열등의 잣대로 규정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연애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그들 모두는 각자의 맞춤형 연애를 하는 것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니 애인은 너한테 무슨 선물 해줬어?"라고 묻는 것 만큼이나 한심한 것은 "우리는 그런거 없이도 잘 살꺼야. 니들은 엉망이야. 두고봐"라고 하는 모습일 것이며, 가장 베스트는 남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둘이 알아서 잘 사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