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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미생>-노동의 피그말리온.



       이렇게 성인들이 열광했던 만화가 <미생> 이전에 언제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직장생활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만화는 많았지만 <미생>은 직장생활을 희화하거나(무대리) 처절한 판타지로 그리지 않고(허영만의 작품들) 건조하게, 그러나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 속의 인물들에 우리가 공감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그들과 같은 중독자이기 때문이고, 나아가서는 무의미하다고 느꼈던 우리의 일상에 어떤 미학을 부여해줬기 때문일 것이다. 장그래의 한마디 한마디는 사실 죽어있는 동상을 살아있는 미녀로 바꾼 피그말리온의 기도와도 같다. 그러나 비참한 현실에 아무리 미학을 부여하더라도, 비참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 아니며 비참한 것이다. 그것이 노동자 스스로의 통제를 벗어났기에 더더욱 그렇다. 노동이 그리도 신성한 것이라면 그리 노동시간 단축에 안달이 났을까.

 

      그렇기에 나는 미생에 대해 '노동소외를 놓치고 있다' 는 이 비평(장그래가 말하지 않는 것들) 많은 부분에 공감하지만 더불어 갑갑함 또한 느낀다.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 기본인 세상에서 ' 중독자' 되는 말고 다른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이너피스를 강조하는 각종 힐링들이다. x이니 x이니 하는 이들이 현실의 양태는 제쳐두고 이너피스만을 이야기한다. 개인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내면의 평화와 힐링은 필요하겠지만 결국 고통의 원인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오는 것이다. 힐링은 결국 모든 이들에게 허탈함과 환멸만을 가져다 것이다

 

      다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체제의 변혁이다. 그러나 거대하고도 집단적인 목표가 하루하루 삶의 목표가 수야 없는 노릇이다. 수유+너머와 같은 무릉도원에의 피신도, 협동조합 , 마을공동체와 같은 일들도 우리가 '돈을 벌어서 살아야 한다'라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 대부분이 가장 손쉽게 택할 있는 행복의 길은 중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손쉽게, 그리고 자주 행복을 가져다 것이며, 가장 확실하며, 생존을 보장하기에 그렇다.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기가 바쁜 이들에게 "정치가 밥먹여준다"라는 말과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다"라는 말은 자신의 일자리가 국제자본의 흐름에 의해 박살이 나기 전에는 추상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며 그런 것들을 변화시킬수 있다는 말은 자신이 십년 이십년 회사의 임원이 되거나 훌륭한 사장이 된다고 하는 것보다도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망상으로 느껴질 수밖에.

 

      그러니 우리가 다시 돌아올 곳은 일에서의 성취감이다. 이것이 제일 구체적이며, 가장 즉각적이다. 더군다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있는 가장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 시대의 성취감은 그런 순수함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노동소외가 분명 발생하고 있으며 성취감의 지속적인 달성이 소외를 채워주지 못하는 박탈감은 끊임없이 밀려온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생존투쟁을 하거나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집착하는 이유가 온전히 자본주의적 이유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노동이 우리 삶의 대부분을 사로잡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 외의 시간과 공간에서 행복해진다는 것은 일종의 회피에 가깝다. '직장 말고는 삶의 전망이 없는' 이들은 부지기수다. 직장 외에 전망이 있는 이들이라면 집에 좀 재산이 있거나, 여유가 있는 전문직이거나, 좋은 집안의 자제일 것이다. 세상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의 직장에 삶의 전망을 담는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10시간을 평일 내내 일하는 이가 주말 이틀 다른 활동을 한다고 삶이 좋아질 만무하다. 어떤 이가 그러한 방식의 행복을 선택한다면, 인생의 1/2 불행하기를 선택하는 것과 동일하다.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에서 행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행복해질수 없다. 자본의 불의에 맞서 세상 대부분의 이들이 요구하는 것 또한 "일터에서의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던가. 좋은 임금, 안정적 고용, 따뜻한 복지체계. 

     그러나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라는, 우리의 노동을 틀지우는 조건들을 생각해보면, 소박하지만 원대한 기획은 몇몇 소수를 제외하면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쪽이 확실한 길이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행복하기 위하여' 워커홀릭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힐링 따위의 기만보다 이쪽이 훨씬 용기있고, 인간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노동환경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는, 혹은 일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사회에서 진짜 인갑답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생이 만들어내는 허무함을 무릅쓰고 계속해서 만화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면, 미생이 노동소외를 놓치고 있다는 비평은 허무한 것이 되어버린다. 미생은 노동소외를 놓치는 것이라기보다는 노동소외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일 중독에 빠질수밖에 없고, 빠져야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