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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시절/잡문

[2009] 얼굴공개의 의미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던가 범죄자의 인권이라던가 하는 면에서는 분명 아직 사회적으로 논쟁거리가 다분한 문제이고 나 자신도 확실한 입장을 견지하는 편이 아니다. 말로는 사형제를 반대하고 범죄자 인권을 얘기하면서도 막상 강호순씨 같은 사람을 보면 정말 복잡한 기분이 들어 그런 찬성이 정말 항상 옳은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때도 있다

그러나 분노에 편승하여 얼굴 공개를 하는것이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결정된 사항으로 인식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식의 공개에 따라 가해자의 가족이 받을 심적 고통은 피해자의 가족이 겪을 심적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거나,이사가거나 감내해야 할 문제라는,근본적으로 연좌제적인 발상을 하는 글을 버젓히 자랑스럽게 올려놓는 모습이 어이가 없을 뿐이다. 더군다나 향후 강씨처럼 확실한 범인이 아닌 조사단계에서 불분명한 부분이 많은 범죄자나 재사회화의 여지가 많은 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 마저도 향후 알 권리라는 미명아래 공개될 가능성도 높다. 아니 분명 그렇게 악용될게 뻔하지 않은가.

실질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향후 사회에 나올 일이 없는,사형 내지 무기징역 구형이 불보듯 뻔한 범인의 얼굴을 공개해서 얻고자 하는게 무엇일까? 공개수배범과 비교하여 얘기하곤 하는데 공개전단지와 전국구 일간지와 공중파 방송에서의 파급력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용의자 검거를 위해 한정적으로 배포되는 공개수배지와 검거후 분노에 편승하여 온 국민이,혹은 대부분이 보는 미디어에 신상을 공개하는것이 공개의 목적이라던가,파급효과를 따져볼때 동일선상에서 비교될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신정아 누드사진을 실었던 심리와 강호순의 얼굴을 실었던 심리는 근본적인 측면에서 거의 흡사한게 아닐까? 알권리라는 명목과 언론의 제기능이라는 명목아래 자행되었지만 이것은 차라리 환경감시나 사회규범 기능이라기 보다는 오락기능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얼굴공개를 통해 범죄예방을 막는다는 심리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비슷한 얼굴형을 주의하라는 관상학적인 발상인가 아니면 앞으로 사람을 믿지 말고 살라는 얘기일까. 아니면 예비범죄자들보고 니들도 범죄 저지르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신상을 공개하고 가해자의 가족까지 심적으로 고통스럽게 할 방침이니 주의하라는 발상일까? 피해자 가족의 원통함이 문제라면 그들에게만 공개하는 방식도 충분히 논의해보면 나올수 있는데 왜 다들 그렇게 쉽게,아무생각없이 진행할까? 지금 강호신 한사람의 얼굴을 공개한다고 해서 무슨 사단이 난다던가 모든 인권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것이 향후 인권침해 흐름의 시발점이 될수 있다는 것이고 여기서 강호신 수사 과정에서 나왔던 경찰의 태만등에 대한 아무런 지적이나 발전적인 논의 없이 분노에 따른 공개요구만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뭐든 시작이 어려운 법이고 첫 스타트를 띠면 그 뒤는 걷잡을수가 없다. 특히나 사회제도는 비가역적이라 향후 문제점이 도출되고 악용되더라도 되돌리는데는 훨씬 많은 노력이 소모된다.

우리 모두는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 밖의 사람들과 무수히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것은 범죄자도 사람이기에 해당되는 문제인데, 때문에 우리가 범죄자의 인권에 대해서 논할때. 특히 신상공개에 관한 논의를 할때는 단순히 그 범죄자 개인의 인권 문제가 아니라 범죄자의 가족들과 그 지인들의 인권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인권으로 인식을 하는것이 옳다.

 범죄자 개인에 대한 분노에 포커스를 맞출때 그 사람들은 우리의 눈 밖으로 밀려나고,마치 범죄자에 대한 사회의 단죄와 인권침해가 정의의 실현인양 착각될때가 많다. 강호순의 두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끊임없이 이사다니고,불안한 마음에 살지 않을까? 그럼 그 아이들의 인권은 누가 챙겨줄까? 이것이 우리가 범죄자 인권에 대해서 '인권이 필요 없는 놈'이라고 비난만 할게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