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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1001] 피곤한데 무슨 말을 하겠어요.

 피곤이란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변수다. 어제는 수영을 30분 정도 갔다가 회식을 갔다. 새벽 2시까지 이어진 술자리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피곤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택시를 타니, 조용한 택시 속에서 기사님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손님은 정치에 관심 있으세요?"


 보통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은 내 경험 상 두가지 종류다. 새누리당을 지지하거나, 노무현을 지지하거나..물론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이기에 일반화하자는 건 아니다. 어쨌든 그런 경험으로 인해 질문만으로도 나는 피로해지는 것을 느끼며 "있을때도 있고 없을때도 있습니다"라고 말하곤 웃어버렸지만. 아저씨는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하고싶은 말씀이 많으셨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유족의 아픔은 공감하지만 너무 나라가 세월호에만 묶여있다. 유족이 합의를 어느정도 해줘야 하지 않느냐..등등


 나는 그 모든 토로에 대하여 그냥 웃으며 피곤한 이 상황이 어서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10분 정도는 더 달려야 했고, 기사님은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열중해 있기에 나는 그냥 짧게만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유족이 합의 안해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일을 이 상황까지 몰고 온 것은 두 당의 책임이니 지금 이런 지연 상황에 대한 책임을 유족에게 묻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기사님은 정말 의외로 내 말에 수긍을 해 줬고. 별다른 격정 없이 우리는 헤어졌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문득 든 생각은. 내가 만난,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이 만난 소위 '의견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 얼마나 피로함을 느끼고 있었을까 하는 거다. 비슷한 경우가 얼마전에도 있었다. 회사의 회식 중에 세월호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나와 매우 다른 의견들이 테이블을 점령했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크게 불쾌함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피곤할 뿐이었다. 이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아마 많은 이들이 피곤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숨기고 있을 거다. 피곤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갈등을 만들고 의견을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자의 태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은 멀고 일상은 가깝다. 상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초면에 감정 상하지 않기 위해, 택시 안에서 괜히 어색한 분위기 만들지 않고 조용히 쉬고 싶어서, 굳이 나의 지향을 드러내봤자 바뀌는 것은 없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결정적 국면이 왔을때의 선택이지 평시의 부단한 의견 지향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의견이 피곤을 불러온다면 그 누가 의견을 쉽게 개진하겠는가. 아이스 브레이킹만 해도 모자른 판국에 숨막힐거 같은 적막을 달가워 할 이 누구인가. 하지만 누군가 말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무런 의견도 없다고 생각해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이가 의견개진을 기피한다면, 그것은 그가 정말 아무 생각과 관심이 없어서 일 수도 있지만 그저 피곤하기 때문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전에는 별로 하지 않았을까.


 피곤을 뛰어넘으면 모 아니면 도가 된다. 소통의 순간이 열릴수도 있지만 더 피곤한 상황이 올 수도 있기에 피곤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피곤은 생각보다 많이 만연해있고 피곤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우리 모두가 그런 것을 갖출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많은 이들이 의견을 쉽게 내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