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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사유속의 영화(문학과 지성사) 中

현상학이나 메를로 퐁티, 심리학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우리가 흔히 '그 사람의 마음은/사랑은/분노는 그 사람만 알지'라고 말하는 우리의 경험주의적인(?) 태도들에 대해서 의미있는 글을 읽어서 공유하고 픈 마음에 옮겨보았다.


내가 이해한대로 요약하자면 타인의 감정이란 그 사람만 알고 있는 내적이고 은밀한 무언가여서 우리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도 분명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우리가 공감하고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사유속의 영화(문학과 지성사) 中
6장 영화와 새로운 심리학(1945)-메를로 퐁티


'고전 심리학은 별 다른 논의 없이 내적 관찰 혹은 내성과 외적 관찰 사이의 구별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분노나 공포 같은 '심정 사실'은 직접적으로 안에서만 알 수 있고 이를 겪었던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나는 분노나 공포의 육체적 기호만을 파악할 수 있고 이러한 기호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내성에 의해 내 안에서 공포나 분노에 대해 가졌던 인식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실제로 내성이 나에게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 다는 점을 알려준다. 내가 순수한 내적 관찰을 통해 사랑이나 증오를 연구하려 한다면, 나는 아주 적은 것만을 기술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사랑이나 증오의 본질은 전혀 드러내주지 않는 약간의 불안, 심장의 떨림, 요컨대 평범한 동요들뿐이다...


...사실상 어린아이들은 자기들 스스로 몸짓을 하고 얼굴표정을 내기 훨씬 전부터 다른 사람의 몸짓과 얼굴 표정을 이해한다. 따라서 이런 행동의 의미가, 말하자면 이들에게 부착되어 있어야만 한다.여기에서 우리는 사랑이나 증오나 분노가 단 한사람의 증인, 즉 이것을 경험하는 사람만 접근할 수 있는 '내적 현실'이라는 편견을 없애야만 한다. 분노,수치,증오,사랑은 타인의 의식 가장 깊숙히 숨어있는 심적 사실이 아니라 밖에서도 볼 수 있는 행위나 행동 양식이다. 이것들은 이 얼굴 위에, 이 몸짓 속에 있는 것이지 얼굴이나 몸짓 뒤에 감춰져 있는 것이 아니다.


...화가 났을 때 숨쉬는 속도나 심장박동의 속도를 재는 데 만족한다면, 우리는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자신이 겪은 분노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질적 뉘앙스를 묘사하려고 시도할 때에도 우리는 분노에 대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분노의 심리학을 한다는 것은 분노의 의미를 고정시키려고 하는 것이고 인간의 삶에서 분노의 기능이 무엇인지, 결과적으로 분노가 어디에 쓰이는지를 묻는 것이다.


...감정은 내적이거나 심적인 사실이 사실이 아니라 타인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계가 변화한 것이고 또 이 변화를 우리의 육체적 태도 속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외부의 사람에게는 분노나 사랑의 기호만이 주어져 있다거나 이런 기호의 해석을 통해 타인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타인이 나에게 행위로서 분명하게 주어져 있다고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