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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11/27] 일을 잘하고 싶다는 인간적 욕구에 대하여.

요즘 <일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게시물을 보는 게 페이스북의 소소한 재미가 되었다. 어제는 친구가 '일잘하고 싸가지없는 상사 vs 일못하지만 (혹은 멍청하지만) 의견 잘 들어주고 착한 상사'중에 누가 낫냐는 글을 올렸다. 폭풍같이 댓글들이 달렸지만 대다수가 '일 잘하는 상사'가 낫다는 입장이었고 나 또한 직장은 어차피 일을 하러 모인 곳이라는 신념 아닌 신념 아래 전자가 낫다는 의견을 달았다. 그러던 중 오늘 꽤 인상깊은 의견을 누가 달았다.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다들 너무 일을 잘하는 것과 똑똑함에 너무 큰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닌가. 너무 삭막하다. 슈퍼 갑의 책임 방기를 용인하고 슈퍼갑의 기준에 맞추려다보니 다들 이리 된 것이 아닌가. 나는 일 잘 못해도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람 좋은 사람을 상사로 만나고 싶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고 내가 생각하는 일잘의 기준에서 그렇게 벗어난 것도 아닌지라 내 생각을 다시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마음에 문득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일을 잘하는 것과 똑똑함에 가치를 두는 게 삭막한 일일까?


물론 이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일을 잘한다는 것의 정의와 똑똑함에 대해서 범위를 정해야 할 것 같다. 아마 그분이 말씀하신 일잘이란 일에 대한 어떤 기대나 정체성도 없이 오로지 실적만을 위해 모든걸 희생하면서 달리는 모습을 지칭한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똑똑함도 아마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비판들은 사실 많다. 우리가 많은 부분 공감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쳐도 나는 그런 욕구들이 비인간적이거나, 조장되었거나, 삭막하기만 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미생>에 대해서 '이건 노동중독을 미화하는 만화야'라고 비평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일을 잘하고 싶은 욕구란 무엇일까? 타인에게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나 자신이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 일터에서 하루의 1/3이상을 보내고 있기에 그 시간을 결코 무의미하지 않게 보내고 싶다는 욕구일 것이다. 결과나 양태가 삭막하게 나타날지라도 그 근저에는 매우, 몹시 인간적인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물론 이것이 타인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일이란 혼자 할수 없는 것이기에 일못과 일잘의 갈등은 피할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조직은 그것이 갑에게 주어진 것이건,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이건 목표와 달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냥 '인간적 성장'만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이기도 하며, 일에서의 관계와 인간적 관계를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일을 잘하고 실적을 올림으로써 얻어지는 성취감, 타인에게 나의 존재를 인정받으면서 얻어지는 충만감.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갖게 되는 믿음 등은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허무하거나, 우리 삶에 어떠한 긍정적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런 반짝거리는 혹은 슬퍼하는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어떤 이들의 성공의 욕구, 인정의 욕구가 단순히 목표없는 세속적 욕구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물론 모두가 일을 통해서 그런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일은 그저 일일 뿐, 1/3을 희생함으로서 2/3을 얻어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나도 그런 입장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일에 자아를 던지느냐, 아님 생계수단으로 거느냐 하는 것은 가치의 경중을 메길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건 대부분 선택의 문제조차 아닐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입에 풀칠할 일을 찾은 사람들에게 왜 일에 너 자신을 던지지 않냐,노동으로 자아를 실현해라는 이야기는 빵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는 수준의 이야기이다. 혹 그런 삶을 자발적으로 택했다 하더라도 1/3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으며, 누구나 일을 잘하고 싶다는 '인간적 욕구'는 적건 크건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버티는것이건, 효과적인 것이건, 창의적인 것이건 말이다.


오히려 문제는 욕구의 방향이라기 보다는, 일의 비중이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되는가를 선택하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들과, 능력이 없다고 해서 인간다운 삶의 조건까지 잃어야 한다고 보는 세상에 있다. 워커홀릭이 되지 않으면 '놈팽이' '이기주의자'등의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회의 반대편에는 프로가 되고 싶어하는 욕구를 비인간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가 존재한다. 물론 후자는 전자에 비해서 훨씬 적고,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항상 힘이 든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배움과 건강과 굶주림의 고통을 겪어서는 안된다고 믿지만, 성실을 넘어서 무언가를 열심히 불사른 사람이 더 많은 영광을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영광은 평등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와 전자를 양립시키는 경우는 많이 없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직장에서의 인간적 성장과 일의 성취를 대비시키고 둘 중 뭐가 좋은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두가지가 함께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또한 일터에서의 논리와 일터 바깥의 논리를 명확하게 세우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노동은 삭막해'와 '실적만이 전부'라는 양자 사이에 있는 진짜 삶을 찾는 것일거라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직장은 일을 하겠다는 목표로 모인 곳이니 목표,실적,실행에 대해 노력하는 일에 대한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그 바깥은 다른 기준이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세워야만 하는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 두가지가 섞여 있는 것이 나를 포함한 지금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왜 회사는 엄밀하게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가? 왜 회사 바깥조차 회사 같은가? 하는 의문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