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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12/8] 시간을 낭비하는 법을 잊었다

 날씨가 추워지니 쉬고 싶다는 격렬한 욕망이 솟구친다. 그래도 작년 연차까지는 육개월에 5일 정도는 휴가를 간신히 썼던 거 같은데 여기는 업무강도는 전 팀보다 낮지만 그럴 짬은 없다. 중간 정도의 강도인 대신 일은 끊임없이, 매일 주어진다.


 어찌되었건 이렇게 추워지니 그냥 따뜻한 방바닥에서 차가워서 얼 것 같은 귤을 먹으며 만화책을 보거나. 몸은 온돌과 이불에 들어간 채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트위터나 하루종일 보고 싶다. 그러다가 평일이건 주말이건 신경 안 쓰고 어슬렁 어슬렁 나가서 친구와 술이나 마시고 싶다. 그러다가 술이 더 먹고 싶으면 집에 와서 더 놀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시간낭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때 할 수 있던 것들이다. 이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 계속 그럴 것이다. 그게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며칠 내내 쉬는 것이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 된 요즘은 어쩌다 널널한 시간이 와도 그 끝에 출근이 있다는 생각에 시간을 허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주말에 낮잠을 자거나 멍때리면 뭔가 시간이 아까워 견디지 못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시간이 생기면 영화나 책을 보건. 누군가를 만나건. 뭔가를 기록하건. 술마시며 놀건 뭔가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사실 술마시며 노는 게 더 시간낭비인데 말이다!) 


 직장에서의 생활을 의미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버티는 것으로 생각하니 쉬는 시간에 의미를 찾으려 한다. 회사생활 3년차가 저물어가는 이때 내가 가장 많이 잃어버린 것은 머리숱이 아니라 바로 시간을 허비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