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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1/19] 공립학교의 추억

서울신문 기획 [2015 대한민국 빈부리포트] -절대빈곤층의 자녀교육 中

"초등학교 저학년 때 빈부 격차에 따른 수준차가 뚜렷한 과목은 무엇일까. 영어만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국어 실력의 격차가 아주 크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A양은 3학년 때까지 ‘까막눈’이었다. 한글로 이름조차 쓸 줄 몰랐다. A양의 어머니(33)는 학교에 가면 배우겠거니 믿었다. 하지만 1학년 교실은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돌아갔다. 반 아이 10명 중 8~9명꼴로 입학 전 한글을 미리 배워 오는 현실에서 담임교사는 A양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선생님이 불러 주는 준비물을 받아 적지 못해 반에서 혼자 준비물을 못 챙겨 가기도 했다. 국어를 못하면 다른 모든 과목을 제대로 배울 수 없기 때문에 공부 전체가 엉망이 된다. 다행히 3학년 담임 교사가 방과후 이양을 붙잡고 자음·모음부터 가르친 덕에 겨우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저소득층 자녀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빈약한 어휘력 탓에 교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말 전문가인 서보건 인천대 산학협력단 전담교수는 “임대아파트촌의 고교에 가면 간단한 사자성어조차 모르는 학생이 허다하다”고 했다.

소득 격차는 학습의 밑바탕이 되는 독서 습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불안정한 환경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 부모로부터 독서 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읽는 책은 귀신 나오는 공포물이나 만화 등 스트레스 해소용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고1 큰딸과 중2 작은딸에게 지금껏 책을 사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 B(42·여)씨는 “딸이 나처럼 ‘책만 읽으면 잠이 온다’고 하기에 사줘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면서 “만화책이나 인터넷만화(웹툰)를 읽는 게 딸이 하는 독서의 전부”라고 했다.

도서 구매력이 없는 것도 자녀의 독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C(여·42)씨는 동네를 걸을 때마다 이웃에서 버리려고 내놓은 책이 있는지 유심히 살핀다. 14살과 7살인 두 딸에게 가져다 주기 위해서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들도 이런 사정을 알기에 다 읽은 책은 C씨에게 건넨다. C씨는 매달 10만원씩 충전되는 문화누리카드(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의 영화 관람, 도서 구입 등을 지원하기 위한 복지 카드)를 주로 애들 문제집 사는 데 쓴다.




 

나는 2001년-2003년에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금천고등학교라는 공립고등학교를 나왔다. 당시 학교에 대한 기억은 다 각기 다르게 가지고 있겠지만 소위 학교의 질을 판단하는 일반적 잣대와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의
공립 고등학교라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 학교의 대학진학율이나 학교의 분위기는 결코 나쁘다고만 할 수준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당시는 외국어 고등학교와 과학 고등학교 외에는 소위 '우수하고 잘사는 학생들'의 선택 범위가 넓지 않았다. 이런 관계로 적어도 그 동네에서는 일명 뺑뺑이를 통한 고등학교 배정을 어느정도는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여기에 더해 지적장애학생에 대한 일반학급 참여 및 특별반 별도 편성을 병행하는 학교의 입장 때문에 잘사는 아이,못사는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 춤 잘추는 아이, 공부에 관심없는 아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 등 여러 배경의 아이들이 교실에 모여 있을 수 있었다. 교사의 측면에서는 대학진학 뿐 아니라 아이들의 진로에 열성적인 전교조 교사들의 비율이 50% 이상이었다. 수업 외의 측면에서는 다양한 동아리활동들이 보장됐고, 실제로 상당히 많은 동아리들이 운영됐다.


 이런저런 것들이 어우러져 그 당시 우리 학교의 독특한 분위기를 냈던 것인데. 이것은 비단 고등학교 뿐 아니라 내가 나온 초/중학교 모두 그런 패턴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당시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양아치 꼴통학교라는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였는데, 그것은 두발이나 복장에 대한 지나친 단속을 피했던 당시의 학교 분위기도 일조했었다.


 어쨌든 그런 시기를 지나고 졸업 후, 3년전쯤 고등학교때 선생님을 다시 뵈었을때 그분이 묘사한 고등학교 상황은 내가 10대때 겪었던 현실과는 매우 달랐다. "지금은 잘사는 애들, 공부 잘하는 애들이 모두 자사고,외고,과고,국제고 등으로 빠지고 일반 공립학교에서는 저소득층에 동기부여가 약해 학습의욕이 낮은 아이들 뿐이다. 그 아이들이 그런 것이 본인들의 탓은 아니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학습의욕이 높은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싶은 것도 현실이니 우수한 교사인력들도 공립학교에서 빠져나간다." 라는 것이다. 물론 한 사람의 경험과, 한 사람의 묘사를 통해서만 들은 것이니 그것이 얼마나 총체적인 진실을 묘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래 링크한 글을 보고 있자니 그때 선생님이 묘사한 그 학교의 풍경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내가 지냈던 고등학교 시절이 결코 아름다웠다거나, 지금보다는 인간적이었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진 않는다. 잘사는 우수한 인재들이 들어와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대한진학이 행복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내가 겪은 10대의 공간이 뉴스에 묘사되는 지옥보다는 조금 더 나은 부분들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시스템에 의해 보장된 공간이 아니라 아주 우연한 특성들-서울 저소득 지역, 전교조 교사의 높은 비중 등-이 모여서 만들어진, 모두가 기대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경우에 불과하다는 것도 안다. 또한 당시에도 학교폭력은 지금과 같이 존재했으며, 입시지옥은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대학진학은 언제나 어느정도 사는 중산계급 이상의 몫이었다. 아무리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해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 대한 학교의 편애는 쉽게 숨겨지지 않았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있는 동아리와, 그렇지 않은 동아리에 대한 학교의 태도는 쉬이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자신이 이 모든 것들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가지 더 나은 점이 있다면 어쨌든 '다양한 사람들'을 교실에서 만날 수 있었고, 뜻이 있는 교사들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가 전교조였다는 것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보고 들어보면 지금은 그런 다양성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초등학교때 읽은 동화에서도 주공아파트 산다고 왕따시키는 초등학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으니 이런 격리와 왕따의 역사는 오래 된 것이겠다. 하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또한 시실이다. 내 생각에 교실의 다양성(단순히 취향이나 성적을 벗어나 계급을 포함하는 의미에서)이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다양성 자체가 견딜 수 없는 폭력으로 여겨지는 상황이 됐다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다양한 이들과 산다고 해서 모두가 두루두루 어울릴 수는 없다. 입시지옥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그래도 다양한 이들과 어울려야 해'라며 아이들을 공립에 보낼 수 있는 간 큰 사람들은 얼마 없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일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 나와는 다른 이들이 많이 존재하며 그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익히는 것은 우리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경험들이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