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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다] 오로지 특수하기만 한 현상은 없다 - 유럽적 보편주의

 우리는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상황들의 특수성 (세상 어디에서도 안 이러는데 왜 우리에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건들에 존재하는 보편성을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한국의 경찰국가화, 복지 약화,극우파의 득세들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분명 한국이 가지고 있는 개인단위의 생존철학과 그것을 키워온 사회/경제적 환경에 기인하는 특수한 현상이지만 더불어 점점 더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세계 체제가 겪는 변화의 말단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문제라 말하는 것은 실상 우리가 모델로 삼고자 하는 유럽 복지국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한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필 때마다 그 지면 속에서는 경찰국가화되는 유럽 국가와 갈수록 심해지는 노조 탄압, 극우화 분위기를 비판하는 기사가 한가득이다) 이러한 정보들을 접하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상이나 해결책이라는 것은 단순히 현재에 존재하는 어떤 사회들을 모델로 삼는 것 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특수성과 보편성을 같이 봐야 한다는 것은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니니 조용히 살자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겪는 문제가 세계 곳곳에서도 일어나는 문제와 동일한 원인과 양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깊은 생각과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150페이지 내외의 짧은 분량을 가진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이 책은 간단히 말해 현재 보편주의라고 불리는 인권/민주주의/합리적 과학등의 현란한 수사들이 얼마나 권력 편향적으로 사용되는지를 논증해나가는 에세이이다. 에스파냐가 인디오들을 침략할때 썼던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논리구조는 이후 오리엔탈리즘을 거쳐서 현재는 과학적 합리주의/인권 등의 수사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학문과 인식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퍼져나갔는지를 이야기하는데, 그 과정을 읽고 있자면 우리가 자주 '한국적 현상'이라고 믿는 대학사회의 약화, 인문과 과학의 독특한 우열관계, 사회과학의 약세 등이 단순히 한국사회의 특수성이 아닌, 전 세계적인 경향속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자신이 이 책에서 말한 역사화의 시도 - 우리가 바로 가까이에서 연구하고 있는 현실을 더 큰 맥락, 즉 그 현실이 자리잡아 작동하는 역사적 구조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거장은 이런 논증 과정에서 쉽사리 '상대주의' '탈 근대주의'따위를 말하지 않고 현재의 보편주의는 유럽적 보편주의, 권력의 레토릭일 뿐이라며 보편적 보편주의를 찾아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꽤 감동적인 한편의 에세이기도 한 책이다. 아래는 본문 발췌. 상당히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많은데 여기에 다 옮길 수가 없어 대학과 지식체계에 대한 부분 몇가지만 발췌해서 옮겨보았다. 관심이 있는 분은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우리는 통상 제도로서의 대학을 중세 유럽에서 발전한 것이라 말한다. 이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우리가 대학 식전에서 멋진 가운을 입도록 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는 하나의 신화다. 가톨릭교회의 성직제도인 중세 유럽대학은 본래 근대세계체제의 시작과 함께 사라졌다. 그것은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 거의 사멸되었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만 살아남아 있었다. 대학은 당시에는 확실히 지식생산 내지 재생산의 중심거점이 아니었다. 대학의 재출현과 변모의 출발점을 19세기 중반으로 잡을 수 있다....세계 전역의 대학제도가 완전한 융성기에 도달한 것은 1945년 이후였다....선도지역을 따라잡아야한다는 주변부지역에서의 점증하는 민족주의적 정서 및 대학기관의 입학자수를 늘려야 한다는 아래로부터의 끊임없는 압력이 이러한 사실과 결합하여..세계 대학제도의 엄청난 팽창을 가져왔다...대학은 진짜 공공기관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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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수를 늘리라는 1945년 이후의 압력 때문에 이 기관에서 어떤 종류의 교육이 제공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주지하듯이 철학자들의 세속적 인문주의는 적어도 두세기 동안, 다소간 성공적으로 이전희 신학적 지식의 패권에 맞서 싸워왔던 터였다. 그러나 그 세속적 인문주의는 이번에는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부르기 시작한 학자그룹으로부터 호된 공격을 받았다...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세속적 인문주의 철학자들은 신학자들이 오랫동안 제공해왔던 것과 인식론적으로 다르지 않은 사변적인 지식을 제공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은 철학자들이 제공하는 지식이 진위를 판정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진리를 재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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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향상된 기술로 변형될 수 있는 종류의 지식, 즉 힘있는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는 어떤 것을 내놓을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른바 과학과 철학의 분리, 즉 후에 나올 용어로 치면 두 문화의 제도화로 이어졌던 단절을 옹호하고 달성하는 데 온갖 물적,사회적 관심을 갖게 되었다....그렇게 쪼개진 기능의 이름은 대학에 따라 달랐지만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대부분의 대학은 자연과학에 속하는 학부와 통상 인문학에 속하는 학부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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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그들이 선호하는 방식-입증 가능한 가설에 기초하고/하거나 그러한 가설로 이어지는 경험적 조사연구-를 사용함으로써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문학 종사자들은...분석적 통찰력, 해석학적 감수성, 즉 감정 이입에 입각한 이해를 강조했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인문학 실천가들이 학문 추구에서 가치 및 선과 미의 중심성을 강조한 반면, 과학자들은 과학이 가치와 무관하며 가치는 옳고 그름으로 결코 나타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가치가 과학의 관심 밖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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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은 더욱 격렬해져..그것은 위신의 문제이자 사회적 재원의 할당 문제였다. 그것은 또한 교육제도, 특히 중등 교육제도의 관리를 통한 청년들의 사회화를 (인문,과학 중)누가 지배하느냐를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했다...특히 힘있는 사람들이 인문주의 지식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과학자들을 훨씬 상위에 놓이도록 함으로써 과학자들이 그 사회적 싸움에서 이기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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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에게 진리의 합법적 주장에서 우선권이 주어졌다. 인문주의 지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러한 근거지를 양보하고 선과 미의 판정을 추구하는, 즉 단순히 추구만 하는 사람들의 게토에 머물게 되었다. 이는 인식론적 분리 이상으로 진짜 결별이었다. 세계 역사에서 유래가 없는 진리추구와 선미추구 간의 선명한 분리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제 그러한 분리는 지식의 구조와 세계 대학제도에 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