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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잡문] 여성을 여성으로 대하기.


생각해보니 어제는 여성의 날이었다. 여자친구를 만났다면 장미꽃이라도 한송이 주며 여성의 날을 축하했을 텐데. 친구들과 술을 한잔 하며 우리가 대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내 자신이 남자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준으로 얘기해보자. 흔히들 남자 이성애자들은 연애대상으로서의 여자의 여성성만을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이 연애대상으로서 매력이 있어야만 그사람의 여성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무수히 자주 발견된다. 누군가에게 젠틀한 태도를 보이면 '너 그사람한테 관심있냐?'라는 태도가 나오기 십상이고, 나와 특별히 연애감정이 없는 여성들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을 때 '이쁘다'라는 칭찬을 했을때는 '영혼없다'라느니 '왜 그런말을 하는가'라는 의혹이 쏟아진다. 다시 정리하자면, 여성에 대한 어떤 칭찬과 호의는 사실상 '연애대상으로서의 여성'에게만 국한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지 않은 여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항상 취해왔던 태도가 있다. "니가 무슨 여자야. 우린 친구야"


하지만 나는 이 말이 상당한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설사 그 대상이 나에게 연애대상이 아닐지라도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그녀는 엄연히 여성이고, 우리는 여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그녀를 대해야 한다. 하지만 그 폭력성은 상당히 묘한데,'니가 무슨 여자야'라는 그런 태도들이 표피적으로는 어떤 종류의 평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누군가를 '여자'로서 대할 때 그 전제가 되는 여성성이라는것이 '남성이 보호해주는 여성'이라는 상당 부분 마초적 발상과 중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평등성이라는 것은 각자의 남성성/여성성을 인정하는 조건아래에서의 평등성이 아니라 여성성을 지우고 남성성을 강요하는 형태의 평등성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남자 집단에서나 통용되는 농담들을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그러나 설사 우리가 여성을 여성으로서 대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마초적인 인식과 중첩되는 부분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천의 단계에서 끊임없이 부대끼며 식별해나갈 수 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여성을 여성으로서 대해야 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특수한 환경을 최대한 고려하고 그것이 도출해내는 어떤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렇게 써놓으면 거창하지만, 사실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원칙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 원칙이 유독 한국에서는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뿐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이 경우 명료한 지침을 줄 수 있는 페미니즘 이론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지침으로 삼아야 할 만한 어떤 이론적 방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저 수없이 사람을 대하고 생각하고 조심하고 실수해나갈 수 밖에 없다.


 남녀평등이라는 것이 남녀의 세계관과 인지가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노력 중 하나는 '이성애적 연애대상'을 떠나서 여성을 여성으로 대해야 하는 것일 게다. 나에게 매력이 없다고 해서 그녀가 가진,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이 느낄 수 밖에 없는 보편적 감정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참으로 몰지각한 처사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이런 태도를 가지고 몰지각한 행동을 해왔던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일요일 밤이다. 노력하며 살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