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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연

[보고 쓰다] 우리가 원했던 일본 영화 - 기생수



기생수 파트1 (2015)

Parasyte: Part 1 
7.7
감독
야마자키 타카시
출연
소메타니 쇼타, 후카츠 에리, 아베 사다오, 하시모토 아이, 히가시데 마사히로
정보
스릴러, SF | 일본 | 110 분 | 2015-02-26


어렸을 땐 만화를 영화로, 영화를 소설로, 소설을 만화로 옮기는 미디어믹스 혹은 원소스 멀티유즈란 다른 그릇에서 그릇으로 물을 붓듯이 그냥 옮기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겨우 몇년전에서부터야 그런 전환 작업이란 그리 쉽지 않으며 각 매체는 고유한 형식이 있기에 각 특성에 맞춰서 스토리와 연출도 변형, 혹은 재해석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 교훈을 준 작품들은 대개가 일본영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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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쏟아내는 만화 원작의 영화는 항상 실망의 연속이었다. 원작을 가진 모든 영화들의 숙명이겠지만 보통 만화를 영화로 옮길때 보통 두가지를 보게 된다. 하나는 비쥬얼 구현이고 다른 하나는 스토리 혹은 주제의식의 구현이다. 만화와 실사의 차이를 고려했을때 비쥬얼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재해석 혹은 외향을 포기하더라도 캐릭터성만은 살려내는 과감한 수정이 필요할 것이고(영화는 아니지만 좋은 사례로써 미생의 오과장이 있겠다) 스토리와 주제의식은 대체로 방대한 원작들을 고려하면 여러 편수로 만들더라도 5~6시간 내외인 영상에 구현하기 위한 적절한 생략과 강조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위:철인 28호 / 아래:독수리 오형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본 만화 원작의 영화는 이 두가지에 모두 실패했다. 만화의 비쥬얼을 어떻게든 영화에 우겨넣으려고 하는 단순한 발상은 영화를 코스튬 플레이어 영상집 수준으로 만들었고, 각색 과정에서 적절한 생략과 강조가 없는 구성은 영화를 본 뒤에 '그래서 뭔데?'라는 의문만 남게 했다. 단순히 휴먼드라마를 다룬 작품을 영화로 다시 만드는 것은 나름 괜찮은 성과를 낳았지만 (ex.사토라레,노다메 칸타빌레), 상상력이 동원된 SF물이나 배틀물을 영화로 옮기는 것은 별로 성공한 사례가 없어보인다. 그 대표적 예시가 아마 <독수리 오형제> 라던가 <철인 28호> <충사> <캐산> <데쓰노트> 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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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 근래 본 <바람의 검심> 3부작과 <기생수> 1부는 확실히 다른 양상이다. 두 영화 모두 뺄건 빼고, 강조할 것은 강조하면서 영화의 묘미를 살리고자 했고 그 의도가 잘 구현된 영화들이다. <바람의 검심>의 경우 비쥬얼을 그대로 구현하려는 고질적 문제가 여전했고 3부작 중 마지막 편의 마무리가 중구 난방으로 흘러갔지만 검객들의 배틀물이라는 부분에 포인트를 맞춘 덕에 주인공들의 액션씬을 속도감있게 잘 구현해냈다. 켄신은 3부작 내내 '비천어검류'라는 필살기를 구현하는 영웅이 아니라 칼싸움을 속도감있게 잘 펼치는 액션물 주인공처럼 보인다. 여기에 더해 스토리와 캐릭터 묘사에 있어서도 생략 및 강조를 잘 이뤄냈다. 이렇게 좋은 액션 영화로서 <바람의 검심>이 탄생했다.


바람의 검심

<바람의 검심>보다 더 잘 뽑혀져 나온 것은 이번에 한국에서도 개봉한 <기생수> 1부이다. 우선 <기생수>의 비쥬얼은 더할 나위 없다. 다루는 배경과 인물이 현대 일본인 만큼 기생생물 外 인간 측 등장인물의 비쥬얼은 큰 부담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구현되었고 기생생물 또한 크게 위화감 없는 형태로 잘 구현됐다. 기생생물의 액션씬도 기대 이상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원작의 흐름과 주제의식을 살리되 각 에피소드에 있어서 아주 효과적으로 생략과 강조, 재해석을 이뤄내어 짧은 시간 내에 원작만큼의 풍부함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원작을 보고 나서 영화를 보면 더 잘 알수 있겠지만 10권이라는 만화 분량 내에서 빼야 할 인물과 에피소드들은 과감히 쳐내고, 2~3개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어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비약이 있고 원작을 모르는 이가 보기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원작의 팬이 보기엔 아쉬운 부분도도 있지만 대부분 전혀 위화감이 없고 납득 가능한 수준이다.


물론 이는 원작 자체가 워낙 빠른 전개가 이루어지는 작품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군더더기 없는 원작을 더 간단명료하게 다듬었다. 혹자는 이를 앙상하다고도 표현하지만 나는 이 과정이 꼭 필요하고, 잘 구현됐다고 본다. 또한 우리가 원작을 보며 경악하고,슬퍼하고,짜릿했던 장면들. 이를 테면 기생생물의 첫 살육 장면, 신이치 엄마의 죽음과 신이치의 복수, 신이치의 강해진 모습 등을 보며 우리가 느꼈던 감정들이 영화의 방식을 통해서 잘 전달된다.

원작과는 다소 다른 오른쪽이의 성격도 또다른 재미 포인트다. 원작에서는 진중하고 스마트했다면 영화의 오른쪽이는 신이치와 같이 성장해나가는 감정이 풍부하고 쾌활한 캐릭터로 나온다. 원작을 봤다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지만 원작을 보지 않아도 즐겁게 볼 수 있는 호러+액션 혹은 일본판 히어로 무비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한다면,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할때 사람들이 기대했던 건 적어도 이 정도의 퀄리티였을 것이다. 어떤 엄청난 재창작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걸맞는 원작의 재구성을 원했을 것이다. 가상이 피와 살을 가진 진짜 인간의 모습으로 현실에 살아움직일 때의 피그말리온 같은 짜릿함, 그게 이제서야 이뤄진 셈이다. 물론 원작을 배제하고 생각했을 때 '수작'이냐고 말할 수 있냐면 주저하게 되겠지만, 그런 가정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이 영화를 어디까지나 <기생수> 원작의 재구성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영화가 원작에 부합하는 것도, 혹은 원작을 능가하는 것도 모두 원작 <기생수>를 전제하는 것에서부터 가능하다.



과연 2부는 어떻게 될까? 기생수의 주요 명장면들이 1부에서 많이 구현됐지만 그래도 중요한 장면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고토와의 싸움, 신이치의 삶에 대한 갈구, 오른쪽이와 신이치의 우정 등등. 영화는 만화와는 다소 다른 주제의식을 향해 갈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 또한 2부가 나와봐야 알 일이다. 에콜로지를 이야기하는 것 처럼 보이는 1부가 2부에 가서 원작의 주제의식인 "인간의 진정한 매력"을 구현해낼까? 신이치와 오른쪽이의 팬으로서 부디 4월에 개봉하는 2부가 훌륭한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훌륭한 만화들이 <기생수>와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영화로 제작되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