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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거대한 전환 1. 인 간이 인식할수 있는 시간지평이란 비교적 짧은 탓에 우리는 매번 지금 우리를 둘러싼 환경들이 역사가 장구하거나 혹은 인간에 본성에 기초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이 상황들은 장구한 역사의 선형적인 진보의 과정이라고 쉬이 믿어버리기도 한다. 페인트칠을 진짜 하늘로 알고 살았던 트루먼의 모습을 다소간 어느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인데 사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의문투성이일수밖에 없다. 정 말 역사는 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일까? 우리가 자연스럽게 생각한 모든 것은 단지 그것이 우리와 동시대의 것이기 때문이지 전체적인 흐름에서도 자연스러운 것일까? 사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들이 하나 둘 씩 무너지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것을 보고 있자면-그것이 이명.. 더보기
[2009] 폭력의 세기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라고 했던 한나 아렌트의 정의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또한 여전히 폭력으로써 기억되는 중이다. 이 땅 바깥을 굳이 벗어나지 않더라도 지난 여름 전경 군홧발의 기억에서부터 평택 최루액의 기억까지 현재도 폭력에 대한 의문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폭력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저항으로써의 폭력은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까. 폭력이 곧 세상을 바꿀수 있는 힘일까. 등등 극단적인 상황속에서 밖에 표출될수 없는 그 성격 상 폭력은 우리에게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던진다. 인 간이 아직도 덜 진보되어서 이렇듯 폭력이 만연한 것일까? 그렇다면 어디까지 진보해야 이 기나긴 폭력의 역사가 끝날 것인가?라는 생각을 우리는 종종 한다. 한나 아렌트는 이에 대해 “바로 그놈의 진보가 문제다.”라고 지적.. 더보기
[2009] 얼굴공개의 의미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던가 범죄자의 인권이라던가 하는 면에서는 분명 아직 사회적으로 논쟁거리가 다분한 문제이고 나 자신도 확실한 입장을 견지하는 편이 아니다. 말로는 사형제를 반대하고 범죄자 인권을 얘기하면서도 막상 강호순씨 같은 사람을 보면 정말 복잡한 기분이 들어 그런 찬성이 정말 항상 옳은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때도 있다 그러나 분노에 편승하여 얼굴 공개를 하는것이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결정된 사항으로 인식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식의 공개에 따라 가해자의 가족이 받을 심적 고통은 피해자의 가족이 겪을 심적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거나,이사가거나 감내해야 할 문제라는,근본적으로 연좌제적인 발상을 하는 글을 버젓히 자랑스럽게 올려놓는 모습이 어이가 없을 뿐이다. 더군다나 향후 강씨처럼 확.. 더보기